지난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45년간의 분단 현실을 이겨내고 통일을 이루어낸 독일은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게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큰 함의를 갖고 다가온다. 실제로 많은 단체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남북한의 사안에 대입해 현실을 조망하고 있다.

통일 이전 서독은 통일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다. 적극적으로 동독에 접근했으며, 통일이 이뤄진 후에 전개될 시나리오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전개됐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장벽의 붕괴와 그에 이은 통일로 인해 서독이 준비했던 계획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서독은 점진적으로 통일이 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통일 이후 독일은 많은 통일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통일 후 정상화가 되는 데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일찍이 통합을 준비했고, 동서독의 경제수준이 남북한보다 월등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불했던 독일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통일을 위한 우리의 준비는 너무나 미약할 따름이다.

통일 후 동독 주민들이 겪었던 정신적 충격도 고려해야 한다.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로 통일이 이뤄지면서 통일과정에서 서독 정부가 주도권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로 인해 동독 주민들은 통치를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시장경제로 편입되며 과거와 달리 직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동독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박탈감 역시 적지 않은 사회문제가 됐다.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 동독 공산당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현상도 이로부터 비롯됐다. 서독 정부가 구 동독지역의 통치에서 가능한 한 많은 동독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내에서 통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또한 고려돼야 한다. 통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론이 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북한과의 통합·통일에 찬성하지 않거나 이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청년 세대 등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국민 통일의식 조사’에 의하면 통일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응답자는 63.5%지만, 이중 ‘반드시 통일이 돼야 한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3.1%에 불과하다. 또한 통일 과정에 “남한 주민의 막대한 통일비용 부담”이 가장 큰 문제라고 답한 응답자가 47.2%에 달했다.

우리의 통일은 독일과 동일한 방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30년 전 독일 통일과 그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도 고민이지만, 우리 사회 내부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통일문제가 우리 사회에 고통스러운 비용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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