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회피형 기자로 살아남기
신문사에서 회피형 기자로 살아남기
  • 황예정 기자
  • 승인 2019.11.24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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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황예정 기자

첫 특집 기사가 끝났다. 적은 분량의 기사만 쓰다 혼자서 한 면을 채우려니 꽤 힘들었다. 취재원을 구하고 기사를 쓰는 것도 어려웠지만 날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나의 ‘회피성 성격’이었다. 회피성 성격이란 주로 대인관계에서 비판과 거부가 두려워 타인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나를 사랑해 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낯선 사람 앞에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하며 끊임없이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부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에게 기자라는 일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여덟 통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면 답장은 달랑 두 통. 그것도 거절 메일이다. 전화를 걸거나 길가의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더 끔찍하다. 신천지 전도사를 본 마냥 손사래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타인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청하고 거절당하는 것이 숙명인 기자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회피성 성격의 핵심은 실제로 거절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당할 것 같다’라는 지레짐작에 있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에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막상 거절 메일을 받자 아무렇지 않았다. 전화를 걸 때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존재는 온데간데없고 상냥한 목소리만 있었다. 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거짓 공포였던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회피성 성격의 극복 방안으로 ‘직면하기’를 제시한다.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면 그 실체가 허상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발씩 미인대회의 실체에 다가갔다. 미인대회 주최자, 참가자, 여성 단체, 교수와 TV 칼럼니스트까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대회에 여전히 수많은 욕망이 얽혀있음을 봤다. 우리가 끝난 이야기라며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 미인대회는 핑계와 변명을 입고 새롭게 자라나고 있었다. “수영복 심사를 피트니스 복으로 대체했다” “미인대회는 K-뷰티 홍보의 장이다” 등 어딘가 찜찜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헛소리라고 매도하기는 어려웠다. 문제에 직면하려 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졌고, 결국 나는 적당한 선에서 다시 회피하기를 택했다. 「한국일보」 등 주최 측의 속내와 미인대회에 담긴 더 깊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그러나 겁먹고 도망가버리기 일쑤였던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도 놀랍다. 받지 않는 번호로 또 전화하고, 인터뷰가 거절당하면 다른 인터뷰이를 찾아 뛰어다니는 동안 어느새 나는 ‘직면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었다.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해내는 것, 불안의 알을 깨고 성장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 거는 것이 무섭고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 싫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세상에 말을 걸 것이고, 펜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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