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호 특집 | 전 편집장 회고

이수강 제12대 편집장 (1993. 8. 1~1994. 1. 31)
이수강 제12대 편집장 (1993. 8. 1~1994. 1. 31)

『대학신문』 최근치를 받아 보니 ‘총학생회 20년사: 공약으로 다시 보기’라는 기획이 있었다. 20년사라…. 그런데 기점이 2000년도 선거다. “아, 여기서 나는 ‘역사 이전’의 세대네?” 싶었는데, 그 뒤에 이 글의 청탁을 받게 됐다. 요즘 말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를 피하기 어렵겠다. 

나는 신입생이던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대학신문』 기자를 했고, 대학은 2001년 말에야 떠났다. 가방끈보다 훨씬 긴 대학 시절을 두고 누가 물어보면 “제3세계 대학에 들어가 제1세계 대학을 나온 것 같다”라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 『대학신문』 시절은 한마디로 ‘과도기’였던 것 같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신군부 정권이 ‘항복 선언’을 했는데, 그로써 민주화(운동)가 일단락된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1991년 5월(명지대생 강경대 군 치사 사건에서 비롯된 투쟁)까지, 내지는 1992년 12월 대선까지 집권 세력과 민주화 세력(재야·학생·노조) 간에 장기간의 ‘헤게모니’ 대격돌이 전개됐다. 그 결과로 이후 한국 민주화의 속도와 방향, 폭과 한계가 정초됐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는 또한, 1987년 6월 승리의 경험을 얻은 학생운동이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이고 대중적이고 대학문화를 주도했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대학신문』도 그러한 학생운동의 자장 안에 놓여 있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도화된 지면’에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려고 애쓰던 기자들은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제목 하나,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많은 씨름을 했다. 

1993년 ‘32년 만의 문민정부’를 기치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많은 변화를 불렀다. 당시 『대학신문』을 보니 ‘날로 거세지는 고시 열풍’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대다수 대학생 배낭여행자들이 목적의식도 없이 떠나고 있다”라고 전한 게 눈에 띈다. 지금 보면 “너무 진지했구만” 하고 미소가 머금어지기도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는 ‘1997년 체제’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회 전반의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대학 생활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시대 배경이 만약 1992년 이전이거나 1998년 이후였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떨까? 시대는 변하지만 청춘의 푸르름은 여전하다. 청년의 희망과 좌절 역시 여전하지만, 그 대상이 다를 테다. 최근 ‘조국 사태’는 2019년 대학생들이 경험하는 현재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현재가 과도기고 전환기고 가장 드라마틱한 때다. 최근 『대학신문』을 보니 학생들이 신문을 잘 읽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온다. 일반 언론도 얼마나 다르랴. 고단함 속에서도 『대학신문』이 이 시대를 기록하는 역할, 그 ‘복된 짐’을 잘 감당해주기 기원할 뿐이다. 지령 2000호 발행을 축하드리며 ‘꼰대 말씀’ 이만 줄인다.

 

이수강 제12대 편집장(1993. 8. 1~199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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