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국제대학원 교수ㆍ국제학과

입학식이 열린 지 한주가 지났다. 캠퍼스 곳곳의 게시판에는 신입생들을 유혹하는 선전물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려는 동아리 광고에서부터 연주회 광고, 종교 집회 안내문까지 다양한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이들 선전문 중에 유독 많은 것이 동문회 안내문이다. ‘어느 고등학교 출신 모여라’, ‘어느 지역 출신 모여라’는 광고들이 캠퍼스 곳곳에 붙어있다.

나 자신도 학창 시절에는 동문회에 자주 나갔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신림동이나 낙성대의 막걸리 집에서 소위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술을 마셔대곤 했다. 고약한 선배를 만나면 ‘얼차려’를 당하기도 했지만 능력(?)있는 선배를 만나면 덕분에 미팅도 해보는 특전을 누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립고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문회가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우리 캠퍼스에서 동문회 안내문은 이제 없어져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일본으로 유학간 첫 해에 받은 충격 때문이다.

이국땅에 유학간 나에게 캠퍼스의 모습 하나하나는 모두가 신선했지만 그 중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신학기 캠퍼스에 동문회 안내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보다는 동아리 광고로 게시판이 빽빽했고 캠퍼스 곳곳에서는 동아리의 선전과 탐색전으로 4월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동아리 선배들의 열정은 대단하여 연극부는 캠퍼스 곳곳에서 즉흥 연극을 공연하였고 스킨 스쿠버팀은 장비 전시회까지 열면서 열심히 신입부원을 모집하였다. 신입생들의 관심도 대단하여 아에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각 동아리의 활동 내용을 꼼꼼히 적어가며 분석하는 친구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업시간까지 빼먹어 가며 동아리를 탐색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에 왜 동문회 안내가 없는지, 왜 동아리 모집이 많은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문회 모임을 왜 하는지를 거꾸로 내게 물어보기도 하고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로 대답하기도 했지만 한 여학생의 대답이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왔으면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지 왜 지나간 과거의 친구들과 다시 사귀어야 하는갚라고.

이 대답은 이후 나에게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커다란 잣대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소중히 여기는 데 대하여 일본은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과거 지향적인데 반하여 일본은 미래 지향적이지 않는지?

귀국 후에 본 우리 사회도 이러한 잣대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은 케케묵은 과거사를 가지고 난리 법석을 떨고 조직사회에서는 아직도 출신학교나 출신지역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라는 가장 자유로운 곳에 앉아서 그들을 비난하기도 한탄하기도 하지만 그 뿌리는 바로 우리 주변의 게시판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백지처럼 순수한 신입생들에게 출신 고등학교나 출신 지역의 선배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낡은 색을 칠하려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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