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최근 유가 하락 사태의 원인과 파급력을 되짚어보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의 경제가 침체되며 국제 원유 시장에서 원유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월간보고서 3월호에 따르면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국가 간의 운송‧여행 등이 축소돼 석유의 수요량이 전 분기 대비 하루 평균 250만 배럴 줄었다. 그 결과로 유가가 하락하자 산유국들 사이에서 원유 감산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의 원유 감산 협상은 러시아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무산됐다. 결국, 두 나라 모두 증산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유가는 더욱 폭락했다. 석유 증산 정책을 이어 나간다면 주요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와 러시아는 원유 가격 폭락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두 나라가 석유를 증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균형이 파괴되다

자원을 두고 여러 국가가 경쟁하며 상호 작용하는 상황은 ‘연속 반복 게임’을 통해 분석해 볼 수 있다. 반복 게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 간의 합의가 이뤄지는 균형점을 두고 ‘보복 전략’이 성립한다. ‘보복 전략’이란 상대방이 균형점에서 벗어나면 그에 대해 보복을 하되, 균형점으로 복귀하는 것을 언제나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표에 제시된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 결정은 A와 B 모두 협력을 택해 총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단 한 번 진행되는 것이라면 각자가 이익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상대가 협력의 전략을 취할 때 자신은 비협력 전략을 취한다면, 협력 전략을 취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인 10보다 높은 14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만약 상대방이 비협력 전략을 선택하더라도 자신이 비협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협력할 때의 이익인 3보다 높은 5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 A와 B가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고자 한다면 이 게임에서는 A와 B 둘 다 비협력 전략을 선택할 것이고 결국 총 이익이 가장 적은 상태에서 균형을 이룬다. 이런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표현한다.

1회성 게임과는 달리 연속 반복 게임에서는 죄수의 딜레마가 해결된다. 첫 번째 게임이 끝나면 두 사람은 상대방이 취했던 전략을 고려해 자신의 다음 행위를 결정한다. 만약 상대방이 비협력을 택한다면 자신도 비협력을 택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보복을 할 수 있는 점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게임이 반복되고 보복을 경험하면서 게임 참여자들은 협력하지 않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임을 알게 돼, 결국 모두 협력을 하는 형태로 내쉬 균형*을 이루게 되고 총 이익은 증가한다.

그런데 현실의 연속 반복 게임에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위 예시에서는 참가자들이 어떤 선택을 취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똑같이 설계돼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힘의 차이로 인해 각자의 이득과 손실의 규모가 다르다. 그렇기에 행위자에 따라 보복이 가능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뉠 수 있고, 협력을 통한 균형에 다다르지 못할 수 있다. 이인호 교수(경제학부)는 “게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력하지 않는 게임 참여자에게 실질적인 보복을 할 수 있는 국가가 감시자의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원유 시장은 연속 반복 게임의 한 형태였지만, 현재의 원유 시장은 2000년 후반 셰일 혁명 이후 원유 수출국으로 새롭게 떠오른 미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게임의 조건이 달라진 상태다. 원유 시장에서 협력 행위는 원유 감산이고, 비협력 행위는 원유 증산이다. 기존의 원유 시장에서는 원유 생산량이 가장 많고 생산 원가가 낮은 사우디가 감시자의 역할을 맡아 왔다. 1990년에 베네수엘라가 돌연 원유 증산을 해 균형을 무너뜨리자 사우디가 그보다 큰 규모로 증산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수압파쇄공법* 기술의 발전으로 셰일 오일이 경제성을 가지면서 개발이 시작됐고, 셰일 오일의 매장량이 많은 미국이 국제 원유 시장에 공급자로 참여하게 됐다. 정훈영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은 원유의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자원 독립국이 됐고, 세계 원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라고 설명했다.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한 국가인 미국이 비협력적인 태도를 취할 때 사우디는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은 협력 전략을 취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비협력 전략을 취함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취해 왔다. 러시아는 2016년에 자국과 사우디가 원유 감산 협약을 맺은 것이 미국의 이익만 증대시켰다고 생각해 불만을 가졌다. 러시아 최대 원유 생산 기업 로즈네프트의 미하일 레온티예프 대변인은 “석유수출기구(OPEC)가 감산 합의를 지속해 온 결과, 미국의 셰일 오일이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인호 교수는 “그동안은 사우디가 감시자의 역할을 해 왔지만, 셰일 혁명 이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결국 증산 경쟁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미국의 참여로 인해 내쉬 균형이 깨져, 불안하게 이어져 왔던 산유국들의 협력 구도가 무너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치킨 게임의 발발, 승자가 존재할까?

이번 원유 증산 경쟁을 ‘치킨 게임’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치킨 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일컫는다. 시장에서 치킨 게임은 주로 과점 시장에서 기업 몇몇이 힘겨루기를 할 때 일어난다. 치킨 게임에서 승리한 기업은 시장을 독점해 높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원유 시장은 일반적인 과점 시장과 달라 치킨 게임이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 힘들다. 치킨 게임에서는 포기한 쪽의 반대편에서 독점적인 이득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점 시장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기업이 기술‧디자인‧인프라 등에서 앞서나가기 시작하면 신생 기업이 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유의 경우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르다. 원유는 모든 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원료이자 땅에 묻혀 있는 자원이기에 경제성만 확보한다면 언제든 채굴 후 거래가 가능하다. 따라서 당장은 산업 전반이 다소 불황을 겪더라도 시장 가격만 상승한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치킨 게임에서의 승자가 존재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허은녕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단기적인 공급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산업 자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라며 “지금 당장은 산업이 휘청거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가가 원 상태로 돌아온다면 산업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의 사례를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당시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 오일을 견제하기 위해 유가를 낮추자 미국의 셰일 산업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원유 가격이 점차 상승하자 미국 셰일 오일 업계는 2018년에는 세계 원유 수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살아났다.

중장기적으로도 세 국가의 원유 산업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세계 석유 소비량 6위인 러시아는 계획 경제 체제 요소가 강해 자국에서 원유 수급이 가능하다. 사우디는 원유 원가가 10달러 정도로 가장 낮기 때문에 가격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득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셰일 산업도 마찬가지다. 셰일 오일은 전통적인 원유와 생산 과정이 달라, 공급이 탄력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허은녕 교수는 “전통적인 원유 산업은 원유 채굴을 시작하면 20~30년 동안 채굴을 멈출 수 없지만 셰일 오일 산업은 셰일층의 특성상 한 곳에서 2~3년 동안 채굴한 이후 채굴 위치와 설비 등의 조건이 바뀐다”라며 “이 때문에 셰일 오일은 시장 가격에 따라 유동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세 국가의 증산 경쟁은 단기적으로 서로에게 피해만 끼칠 뿐, 상대 국가의 산업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독점 이득을 얻기는 어렵다.

이번 증산 경쟁의 파급력은?

이번 원유 증산이 시장에서 원유 가격의 하락으로 직결됐던 것은 아니다. 원유 증산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투자자가 이탈한 것이 원유 가격 하락의 키포인트였다. 지난 8일 사우디가 4월부터 원유를 증산하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의 원유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3월 6일까지 두바이유*는 배럴당 48달러였지만 3월 9일 배럴당 32달러로 떨어졌다. 허은녕 교수는 “소비자의 경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상당수가 필요에 의한 현물 거래를 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소비량이 있다”라며 “반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유가가 더 떨어지기 전에 선물과 현물을 팔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 아직 원유 증산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사우디에서 공급하는 두바이유보다 미국에서 공급하는 WTI*의 가격이 더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관측됐다. 증산을 결정한 곳은 사우디이기에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르면 두바이유의 가격이 가장 크게 떨어져야 하지만, 투자자들이 투자를 철회한 데 따라 WTI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두바이유가 3월 18일에 배럴당 28달러를 찍을 때 WTI는 20달러까지 떨어졌다.

소모적인 증산 경쟁은 산유국들의 고용 핵심을 담당하는 원유 기업의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 특히나 미국의 고용률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셰일 산업의 규모는 셰일 혁명 이후 꾸준히 확대됐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셰일 오일의 생산 원가는 전통적 원유보다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다. 정훈영 교수는 “미국에서 셰일 오일을 채굴할 때는 수압파쇄공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적 석유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라며 “보통 미국 셰일 산업의 손익 분기점을 배럴당 46~54달러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유가가 높을 경우 셰일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지만 유가가 낮아진다면 사료의 가격이 황금알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현재 WTI가 24달러까지 떨어진 만큼, 미국 셰일 산업들은 경영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이아먼드백에너지사(社)의 경우 3개의 유정 완결 작업에 배치한 임직원의 33%를 정리 해고하고 1분기에 3개의 시추 작업을 멈출 계획이다. 유가 하락이 계속된다면 더 많은 셰일 기업들이 잇따라 경영 규모를 축소할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유 수요자의 입장에서도 이번 증산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다. 허은녕 교수는 “보통 석유는 운송과 난방에 많이 사용된다”라며 “이번 원유 증산 사태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운송업과 난방업계는 상당한 수혜를 입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전체 수요가 줄어들어 화물 운송량이 자체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국토교통부 항공포털시스템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화물 수송량은 21만 9981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만 923톤 낮아졌다. 아울러 여행객의 감소가 여객 운송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운송업이 석유 증산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관광공사가 2월 27일에 발표한 2월 관광 통계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떠난 내국인은 전 동월대비 60.0% 감소한 104만 6779명이었다. 코로나19를 심각하게 겪은 한국의 사태에 비춰 볼 때 뒤늦게 심각한 상황을 맞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문제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운송업에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매우 낮아 유가 하락이 미칠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난방업계에서 석유의 수요가 다시 회복돼 금방 불황을 극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허은녕 교수는 “유럽 및 러시아에서는 석유를 난방의 주원료로 사용한다”라며 “난방에 석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늦어도 겨울까지는 원유 수요가 회복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그때까지 원유 증산으로 인한 유가 하락이 지속된다면 석유 수요자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원유 증산으로 인한 유가 전쟁은 남는 것이 없다. 서로 간의 손실을 줄이고자 한다면, 러시아와 사우디와 미국은 서로를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 석유의 공급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석유 공급국들 간의 이해관계 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산유국들 사이에서 비슷한 구도로 반복돼 왔던 자원 경쟁이 강대국들 간의 이익 다툼에서 그치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내쉬 균형: 경제학자 존 내쉬의 게임 이론에서 유래된 용어로, 각 참여자가 상대방의 전략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 자신에게 최적인 전략을 선택할 때 그 결과가 균형을 이루는 최적 전략의 집합

* 수압파쇄공법: 셰일에서는 유체가 흐르기 어려워 암석에 물을 고압으로 주입하고 암석을 파쇄하여 유체가 잘 흐를 수 있는 균열을 만드는 기술

* 두바이유: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주로 동아시아지역으로 수출되며 중동산 원유의 가격 기준으로 활용됨

* WTI : West Texas Intermediate의 약칭으로, 미국 서부 텍사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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