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현 학술부 기자
이소현 학술부 기자

‘중립’을 주장하기 어려운 사회다. 개인이 사회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때, 세상은 그 사람이 어떤 논리를 따르는지,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지까지도 추측한다. 요즘의 대세는 이런 추측을 중간 과정 없이 곧장 확신의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n번방 사건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의 양상을 피력하는 사람이 어느새 “그 페미니즘” 신봉자로 낙인찍히듯 말이다. 해당 사건이 성차별에서 기인한 혐오 범죄라기보다, 범죄 취약 계층에 대한 반인륜적인 범죄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어느새 “잠재적 성범죄자”가 돼 있곤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성별 혐오 범죄의 일환으로도, 성별의 문제를 떠나 한 인격체를 상품화한 인권 범죄의 일환으로 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떨까. 높은 확률로 우유부단한 사람이 된다. 세상은 두 극단의 손을 모두 들어주는 사람의 입장이 이상주의자의 의견과 다를 바 없으며, 사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중립성애자’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가장 적다는 이유로 비생산적이라 간주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런 의견을 주장하는 본인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먼저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대답과 함께 양쪽 관점 모두 설득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릴 때가 많다. 

이로써 그들은 아직 입체적인 의견을 내지 못한 사람으로, 거칠게는 ‘줏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특정 사안에 대해 논할 때 ‘중립성애자’들은 말을 아낀다. 자신의 말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직감해서 그렇다. 또한 자신의 의견 중 일부를 곡해해 어떤 극단론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몰아가곤 하는, 다른 극단론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나는 ‘중립성애자’다. ‘중립성애자’가 생각하는 n번방 사건은 개인의 존엄성이 성범죄 취약계층 집단 중 하나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살되고, 상품화되기까지 한 인권 범죄다. ‘박사방’ 운영자와 참여자들은 성 상품화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을 자신의 성적 쾌락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여겼다. 피해자 여성들이 범죄의 현장을 탈출하고자 할 때면, 그간 채팅방에 유포한 동영상과 피해 여성들로부터 사전에 제공받은 사진․영상물로 그들을 협박했다. 모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운영자와 채팅방 참여자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란 점에서 이는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다. 한편 피해자의 연령대가 범죄에 대응하기 취약한 미성년자와 사회 초년생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취약 계층을 상대로 저지른 인권 범죄이기도 한 것이다. 오히려 한쪽 관점에 치우칠 경우 범죄의 양상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에 n번방 사건은 철저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분석돼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둘 중 어느 관점으로 이 사건을 해석해야 하는지 싸움을 벌인다. 이때 중립을 택한 사람들이 침묵을 유지할 동안, 극단주의자들의 논쟁만 두드러지게 된다. 극단주의자들 사이에는 타협이 이뤄지기 어려우므로, 이들의 논쟁은 소모성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립주의자들의 의견이 과연 비생산적인지 의문을 낳는다. 오히려 이 사건에서 성차별적인 면모를 지적하는 사람을 곧장 비이성적인 페미니스트로 간주하거나, 성차별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자는 사람에게 젠더 감수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에서 생산적인 대안을 찾기가 더욱 어렵지 않은가.

세상은 ‘혼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을 포함해, ‘여성 대 남성’이라는 대립 구도가 개입하는 성범죄 사건들을 보며 줏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 페미니즘”의 추종자거나 “잠재적 성범죄자”이진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조금만 더 줏대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단지 우유부단한 ‘혼종’으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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