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허무는 몸짓
벽을 허무는 몸짓
  • 김대은 기자
  • 승인 2020.04.19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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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장애 무용으로 새로 쓰는 예술사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무용 <공존>이 상연됐다. <공존>은 이정윤 무용가가 휠체어 무용수 30명의 안무를 지도한 작품이다. 연이어 작년에는 ‘제3회 모빌 신 안무 경연대회’에서 국내 장애 무용수가 무용 <낡은 집>으로 아시아 무용수 중 최초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장애 무용수들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장애 예술의 입지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치료를 넘어 예술로

대부분의 장애 무용수는 재활 치료를 계기로 휠체어 댄스 스포츠에 입문한다. 장애 무용수 김정훈 씨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재활을 위해 휠체어 댄스 스포츠를 시작했다가, 장애 예술 단체 ‘빛소리친구들’ 최영묵 대표를 만난 뒤 장애 무용수로 활동하게 됐다. 김정훈 씨는 “사고 전부터 탁구, 농구,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기에 장애 무용에도 입문하기 쉬웠다”라며 “무용을 시작한 뒤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됐고, 이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밝혔다.

장애 무용은 평소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중 97%는 ‘지난 1주간 즐긴 문화·여가활동’으로 ‘텔레비전 시청’을 꼽았고 ‘미술·서예 등 문화 예술 참여’라고 답한 이들은 4%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은 장애 무용을 통해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얻고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인정받는다. ‘빛소리친구들’ 최영묵 대표는 “장애 운동의 일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던 중, 한 장애인 부모가 법률 제정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라며 “그들은 법이, 무의식중에 장애인을 멀리하고 외부자로 취급하며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장애인의 인식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장애인 관객도 장애 무용을 통해 장애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사회에서 타자화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잘 보이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장애 무용수는 자신의 몸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자신 있는 몸짓을 보인다. 장애 무용을 본 관객은 표준화된 몸과 아름다움의 기준에 의구심을 품고, 미의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허명진 무용평론가는 “안무가 라이문트 호게(Raimund Hoghe)는 심하게 굽은 등을 갖고 있고 키도 150cm에 불과하지만, 무대에서 호게가 단독으로 춤추는 동안 아무도 그의 몸을 비정상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관객이 호게의 몸에 익숙해졌을 때쯤 갑자기 나타나는 곧고 키 큰 남성의 몸을 이상하다고 느낀다”라고 예시했다.

(사진 제공: 빛소리친구들)
(사진 제공: 빛소리친구들)

 

장애의 한계를 넘어

휠체어를 탄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가 협업하는 ‘휠체어 댄스’가 국내 장애 무용의 시초다. 휠체어 댄스는 기존 무용 장르에 휠체어를 다루는 기술이 결합한 것이다. 최영묵 대표는 “휠체어 댄스는 기술이 강조돼 예술보다 스포츠에 가까웠다”라며 “휠체어 댄스를 이끄는 사람은 비장애인이었고, 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상태로 보조적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 김용우 등 일부 휠체어 무용가가 휠체어 댄스를 스포츠 활동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예술 작품으로 전환했다. 그동안 휠체어 댄스가 1~2분 동안 고난도 기술을 보여줬다면, 이들은 훨씬 긴 시간 동안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 주는 데 방점을 뒀다. 장애인의 몸짓을 소재로 장애로부터 비롯되는 새로운 감각을 재현하는 무용이 등장한 것이다. 허명진 평론가는 “장애를 작품 소재 삼아,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던 장애인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끌어낸다”라며 “장애인의 고유한 감각 세계는 예술적 영감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장애 무용수는 비장애 무용수와 협업해 무대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비장애 무용수와 장애 무용수 간 위계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비장애 무용수는 전문 교육기관에서 오랜 기간 수련을 받아온 전업 무용수인 데 반해, 장애 무용수는 대부분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뒤 무용을 시작한 아마추어기 때문이다. 최창희 평론가는 “그동안 장애 무용에서는 비장애 무용수가 공연의 전면에 나서서 공연을 이끌었다”라며 “이 때문에 장애 무용수가 극을 주도하는 장애 예술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가 등장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장애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 간 위계 관계를 타파하거나 이를 역전시키려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공연 준비 단계에서 장애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가 함께 즉흥적으로 안무를 만드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최창희 평론가는 “장애인의 몸은 장애인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라며 “20세기 후반부터 예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우연성’을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기회가 됐다”라고 말했다.

장애 무용수와 비장애 무용수 간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장애 무용수가 제시하는 관점이나 감각은 비장애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허명진 평론가는 “비장애 무용수가 장애 무용수를 일방적으로 돕는 수혜적 관점이 사라진다면, 장애인의 신체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애 무용이 나아갈 길

장애 예술을 둘러싼 논의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가 장애인을 타자화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영국에서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국내에도 이 개념이 도입됐다. 포용적 예술은 비장애인이, 사회의외부자로 여겨졌던 장애 예술가를 사회 구성원으로 포용해야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최창희 평론가는 “예술은 누구나 누려야 한다는 ‘포용성’이 전제돼야 한다”라며 “참여자가 제한된 배타적 예술은 예술 가치가 떨어지므로, 모든 예술은 포용성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장애 무용의 입지는 좁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장애 무용수와 장애인 무용단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 김정훈 무용수는 “빛소리친구들을 비롯한 몇몇 장애 예술 단체에서 전문 무용수를 꿈꾸는 장애인에게 무용 교육과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단체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어 장애 무용수를 모두 교육할 수 없고, 외부 공연 요청에도 응하지 못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장애 무용수를 양성하고 장애 무용단을 이끌어 나갈 교육자도 부족하다. 허명진 평론가는 “국가적으로 장애 예술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나 기관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지원이 끝나서는 안 된다”라며 “장애 예술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지닌 창작자, 교육자 및 장애의 고유성을 포착할 수 있는 안무가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장애 무용수들은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계를 바꿔가고 있다. 김정훈 무용수는 “비록 장애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만, 앞으로 장애인과 장애 예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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