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노동자를 위한 아파트는 없다
경비노동자를 위한 아파트는 없다
  • 박지민 기자
  • 승인 2020.05.31 0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10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故) 최희석 씨가 한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내린 일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게시물에는 40만여 명이 동의했다. 또한 최희석 씨의 유족들은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을 근절해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고인의 이름을 딴 ‘최희석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맞춰 여러 시민단체와 정당, 지자체 등에서도 경비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논의 및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경비노동자의 인권 침해 실태와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알아 봤다.

 

반복되는 갑질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폭언·폭행 및 갑질에 취약하다는 점은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2014년 입주민의 폭언과 인격 모독에 시달리던 압구정동 아파트의 경비노동자가 주차장에서 분신하며 논란이 일었고, 2018년에는 한 경비노동자가 술에 취한 입주민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4.4%의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경비노동자의 인권 침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논란이 되자 ‘경비업법’, ‘공동주택관리법’,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경비노동자는 입주민의 부당한 폭력과 갑질에 노출돼 있다.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 문제가 도돌이표를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취약한 노동 구조에 있다. 이철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경비노동자의 고용 형태는 실질적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의에 의한 직접고용이 아니라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이 대부분이기에 사용자의 책임이 불명확하고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 사실상 해고를 당해도 경비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이유로 항의할 대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경비노동자는 입주민으로부터 업무 외 지시를 받거나 갑질을 경험하더라도, 해고될 가능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난처한 현실이다. 실제로 압구정동 아파트 분신 사건 당시 해당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업체를 변경했다. 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끝에, 변경된 용업업체에서 경비노동자들을 재고용함으로써 단체 해고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사례는 용역업체 변경에 좌우되는 경비노동자의 낮은 고용 안정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대다수 경비노동자는 용역업체와 3개월·6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을 맺고 있어 고용의 불안정성이 배가된다. 노원노동복지센터 안성식 센터장은 “최 씨가 근무했던 아파트는 경비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였지만 단기 계약이었기에 고용이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라며 “경비노동자들의 계약 기간은 대부분 6개월 안팎이고 용역 계약이 종료되면 해고되는 처지”라고 털어놨다.

자료 출처: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자료 출처: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취약한 법, 어떻게 고칠까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음에도 경비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조항은 여전히 허술하다. 2017년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6항은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노동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항 내용 중 ‘부당한 지시’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조항을 위반하는 주체에 대한 처벌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 해당 조항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권두섭 변호사는 “경비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이 확인되면 가해 입주민에게 적극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의 2를 신설해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와 3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같은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철수 교수는 “운전 중이거나 승하차를 위해 정차 중인 버스·택시 기사를 폭행한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 같이, 경비노동자에 대한 범죄행위를 가중처벌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라며 입법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비노동 ‘사용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지도 핵심적인 쟁점이다.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공동주택관리법’과 달리 행위자에 대한 징계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근무 장소 변경, 유급 휴가 등의 조치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상 실질적 사용자인 입주민이 사용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항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권두섭 변호사는 “용역업체 선정이나 경비노동자 채용에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공동주택 입주민을 사용자와 같은 지위로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고용노동부에 건의하기로 결의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21일 상임위원회를 열어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확대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경비노동자와 함께

법 개정 외에도 경비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광주 지역 ‘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와 경비노동자 모임인 ‘빛고을경비원연합회’가 맺은 상생 협약이 대표적이다. 협약은 경비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최저임금을 준수하며 3개월·6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을 지양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빛고을경비원연합회를 지원해 온 광주비정규직지원센터 정찬호 센터장은 “입주민과 경비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는 협약이 맺어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갑질 없는 아파트 문화가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양천구도 지난달 13일 경비노동자 고용 안정과 폭행·갑질 예방을 위해 22개 아파트 단지와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런 협약은 아파트 주민의 선의에 기대는 미봉책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법적 지위를 갖는 노동조합이 설립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동조합이 있어야만 경비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경비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약 1%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이 많은 경비노동의 특성상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 센터장은 “협의회나 협약을 징검다리 삼아 노동조합 조직화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30만여 명에 달하는 경비노동자들을 조직화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경비노동자를 향한 갑질 문제가 반복될 때마다 나름의 방지책이 마련돼 왔다. 하지만 방지책들은 대부분 임시방편에 불과했으며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 제2, 제3의 최희석 씨가 더는 나타나지 않도록 이 문제에 대한 많은 관심과 제도적 노력이 유지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포그래픽: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