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금지법’의 망령
‘아이폰 금지법’의 망령
  • 김대은 기자
  • 승인 2020.06.07 0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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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다시 스마트폰 업계의 왕좌에 올랐다. 2020년 1분기 동안 아이폰 11의 출하량은 1천 950만 대로, 단일 모델로서는 전 세계 1위다. 2위인 갤럭시 A51의 680만 대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아이폰이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출시가 불가능했다. ‘아이폰 금지법’ 때문이었다. 당시 ‘이동전화단말기의 표준 플랫폼 규격 준수에 관한 전기통신설비 상호접속기준’은 국내에 출시되는 휴대폰에 ‘위피’(WIPI, 한국형 무선 인터넷 표준 플랫폼)를 탑재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위피 탑재는 플랫폼을 하나로 통일해 콘텐츠 개발을 수월하게 만든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외산 휴대폰의 출시를 막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했다.

과거 우리나라 휴대폰 회사들은 이 법을 등에 업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내에 출시되는 휴대폰에 와이파이 기능을 제거해 통신사의 자체 무선 인터넷을 쓰도록 강제했다. 휴대폰의 방향키 중간에는 ‘NATE’, ‘ez-i’ 등 자체 무선 인터넷 접속 버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는 절대 눌러서는 안 될 ‘금단의 버튼’이었다. 실수로 눌렀다가는 엄청난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에는 한 중학생이 이 버튼을 눌러 인터넷을 즐기다가 수백만 원의 통신비가 나오는 바람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휴대폰 회사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똑같은 휴대폰을 출시하면서도 해외에서는 고급 사양을, 국내에서는 저급 사양을 채택하는 ‘스펙 다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MP3 파일을 휴대폰에 넣기 위해서는 먼저 통신사와 제휴한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한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DCF 파일로 변환해야만 했다. 어렵게 휴대폰에 음악을 넣고 나서도 휴대폰 회사에서 제공하는 싸구려 이어폰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위피 의무화가 폐지되고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먼저 국산 스마트폰에도 와이파이가 들어가서 강제로 통신사 자체 인터넷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펙 다운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요, MP3 파일을 넣기도 훨씬 쉬워졌으며 아무 이어폰을 가져다 꽂을 수도 있게 됐다. 위피 폐지로 국내 모바일 게임 업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애니팡’ 등 흥행작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개발사와 소비자 모두 ‘윈윈’하게 됐다.

한편 ‘아이폰 금지법’이 폐지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와 유사한 법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타다 금지법’이다. 승차 거부, 바가지요금, 정치 이야기 등 택시의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리던 소비자에게 타다는 좋은 대안이었다. 택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와이파이 제공, 휴대폰 충전 기능 등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다는 11인승 승합차를 사용한 탓에 승차감이 좋지 않고 일반 택시보다 요금이 더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위기감을 느낀 택시 업계는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대신 타다 금지법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타다를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소속 수사관조차 타다를 타고 다니자 검찰 내부에 타다 이용 자제령이 내려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이폰 금지법’의 망령이 가시지 않고 있다. 비단 ‘타다 금지법’뿐만이 아니다. 특정 업체에만 공인인증서 발급 권한을 부여한 ‘공인인증서법’,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해외 기업에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넷플릭스법’도 있다. 더 높은 품질과 서비스로 경쟁하는 대신, 상대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률을 만듦으로써 경쟁자를 제거하는 행태에 따르는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아이폰이 도입된 지 만으로 11년이 된 오늘, 각계각층에 남은 ‘아이폰 금지법’의 망령이 하루빨리 사라질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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