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에서 훈김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초여름의 날씨에도, 30년 넘게 이어져 온 수요집회는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그러나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왔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최근 수요집회는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위태롭게 서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 3일(수) 종로구의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42차 수요집회와 이에 대한 맞불 집회의 현장을 찾아갔다.

◇정의연을 둘러싼 목소리들=이날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집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씨가 제기한 부정 회계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은 “정의연에 대한 국민들의 근심은 이사장 개인의 사려 깊지 못한 태도에서 온 것”이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며 조직의 투명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라며 미숙한 지점들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정의연과 그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추였던 수요집회의 중요성과 인권 운동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수요집회는 계속돼야 한다”라며 “이용수 할머니를 비난하는 것은 인권 운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쌓아 올렸던 탑을 우리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수요집회를 지지하는 연사들과 시민단체들도 정의연에 연대의 뜻을 밝혔다. 김한길 연사는 “지난 30년간 정의연에게 너무 많은 짐을 떠넘겨 왔다”라며 “이제는 우리가 정의연과 함께 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는 집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이해한다”라면서도 “수요집회는 외국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중요하다”라며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자유연대’를 비롯한 50여 개의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맞불 집회에서는 정의연과 관련된 의혹들을 들어 수요집회의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맞불 집회에 참석한 연사 A씨는 “할머니들을 내세워 후원금을 착복하는 정의연이야말로 진정한 매국노”라며 정의연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맞불 집회에서는 “정의연이 소녀상을 방패로 사리사욕을 취하고 있다”라며 “소녀상을 철거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평화 집회=수요집회와 맞불 집회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고성과 비속어를 쏟아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맞불 집회가 정당한 비판의 수위를 넘어 모멸적인 언사를 내뱉자 수요집회 지지자들이 부부젤라를 동원한 소음 공세로 대응하기도 했다. 정의연은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나가자”라며 상황이 격화되는 것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마찰이 극심해진 상황을 중재하기는 어려웠다.

경찰이 갈등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맞불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이 충돌을 막아서자 “수요집회가 부부젤라를 동원해 방해하는 것은 수수방관하면서 우리가 이에 항의하자 곧바로 물리적인 제재에 나섰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경찰은 이런 항의에 “정의연 지지자들은 집회 전 신고한 장소 안에 있었지만, 보수 단체가 이를 침범한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수요집회와 맞불 집회의 대립이 경찰의 통제에도 격화되고 있다.
수요집회와 맞불 집회의 대립이 경찰의 통제에도 격화되고 있다.

◇위기의 수요집회=집회가 정치적 대립으로 치달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수요 집회의 방향성에 대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점도 발생했다. 일부 수요집회 참여자들은 정의연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 온 보수 일간지들을 폐간할 것을 주장했고,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기도 했다. 반면 맞불 집회에 참여한 B씨는 “정의연에 대한 의혹이 민주당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준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특정 정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렇듯 수요집회가 정치적 발언들로 점철되면서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주도하며 피해자와 시민들을 결집시켜 왔던 수요집회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상황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처 입힐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맞불 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발언들이 종종 터져 나왔던 탓이다. 집회 현장을 바라보던 이성훈 씨(32)는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을 상처가 가장 걱정된다”라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등의 주장으로 인권 운동과 할머니들이 견뎌 온 세월 자체가 부정당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집회가 계속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자유연대가 오는 24일과 다음 달 1일에 같은 장소에 정의연보다 먼저 집회를 신고한 까닭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집회가 금지되는 상황도 우려된다. 코로나19가 서울에 확산되며 지난달 26일부터 종로구 관내 주요 지역의 집회‧시위가 제한되고 있다. 정의연은 유튜브를 활용한 온라인 집회 등을 계획하고 있으나, 온라인 집회가 오프라인 집회만큼의 반향을 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요집회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며 문제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수요집회가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권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진: 윤희주 기자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