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요한 교수(종교학과)
유요한 교수(종교학과)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하는 ‘나이트 킹’은 하반신이 마비된 힘없는 소년 브랜을 호시탐탐 노리며 가장 먼저 죽이려 한다. 그 이유는 시즌8(2019)의 2화에 가서야 밝혀진다. 브랜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일들을 알고 기억하는 “세상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소멸시켜 진정한 죽음의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억을 모두 지워야만 한다. 이를 이해한 샘웰은 “죽음이 그것이지. 그렇지 않아? 잊어버리기, 잊혀지기. 우리가 어디에 있어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거야”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결국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기억 때문이라 말하며, 기억을 소멸시키는 죽음의 세력과 인간 사이의 처절한 전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종교에 기반한 신화와 의례는 효과적인 기억 장치로 사용됐다. 2천 년의 긴 세월 동안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전한 신화와 의례를 통해 공동의 기억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유월절을 기념하는 의례를 행할 때마다 이들은 성서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를 낭송해 신이 조상들을 강대국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했다는 신화적 사건을 생생한 역사로 되살려 냈다. 이 기억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비현실적이기 그지없었던 명절 인사 “내년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 비현실적 소망은 공동의 기억 위에서 현실이 됐다. 특정 집단의 존속과 전망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억에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인 셈이다.

특히 무고하게 희생됐으나 잊힌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되살려 내야 하고 또 오래 간직해야 한다. 이 희생을 바탕으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잘살아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구효서의 단편 「명두」에서, 마을 주민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태어나는 자식들이 버거워서 갓난아기들을 종종 죽이거나 버린다. 다 늙기도 전에 자식들에 의해 버려지고 죽도록 방치되는 노인들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에만 안도하며 이 모든 죽음을 쉽게 잊어버린다. 주인공 명두집도 어린 세 아이를 그렇게 보냈다. 어느 날부터 그녀는 아픈 사람을 고치고 미친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데, 그 힘은 “50년 동안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던” 기억에 있었다. 그녀의 치유 방법은 단순했다. 기운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불망(不忘)! 잊은 게 있지?”라고 외친다. “잊는 게 죽는 거라구… 무엇이 너희들을 살게 했는지 벌써 잊어?”라고 물어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한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 민주화 운동과 6년 전의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함께 기억해야 할 일들이다. 흐드러진 봄꽃과 눈부신 연둣빛 새잎이 절정인 시기에 아픈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잊어버리자, 없었던 것처럼 살자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 온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건들을 딛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향해,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회를 향해 진전할 수 있었다. 명두집이라면 잊자는 사람들을 향해 “불망!”을 외칠 것이다.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거야”라는 〈왕좌의 게임〉의 대사를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사회적 기억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을 증진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공고한 결속을 위해 증오의 대상을 설정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증오의 힘에 의지하는 기억은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오래 지속되는 기억이 될 수 없다.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철저히 기억해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야” 한다는 주장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힘을 갖지 못한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또한, 우리의 기억이 진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부단히 점검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기억의 내용을 바꾸고 이를 사실처럼 여긴다. 그래서 진실을 바탕으로 하는 공정한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증오를 통한 기억은 『1984』(1949)의 오세아니아에서 시행된 “2분의 증오”처럼, 종종 없던 일을 사실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경계해야 한다. 

올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작업이 증오의 대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통한 화해” 그리고 “용서와 포용”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비극의 5월을 희망의 5월로 바꿔내기” 위해서, 우리는 놓지 말아야 한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진실한 기억, 증오를 품고 뒤틀린 채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함께 나가는 힘이 되는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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