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이기에 충동적이었고, 낙관적이기에 무모하리만큼 부딪혔다”
“긍정적이기에 충동적이었고, 낙관적이기에 무모하리만큼 부딪혔다”
  • 김용훈 편집장
  • 승인 2020.06.07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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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이시원 배우

서울대 학·석사 출신의 배우, 특허와 실용신안 여러 개를 보유한 발명가, 착실하게 작품 이력을 쌓는 한편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지성이 돋보인 엔터테이너. 언뜻 봐도 큼직하고 놀라운 경력은 이시원 배우(경영학과·06·졸)를 묘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된다. 키워드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다채로운 끼가 드러나고 그가 주목받는 이유가 설명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질문을 달리해 이력 너머를 물으면 보다 반갑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주점 ‘동학’과 ‘풍경소리’에서 웃고 떠들던, 자하연의 평온을 아끼고 ‘생초’(생크림 초코 와플)를 즐겨 먹던 대학생 이시원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품어내며 배우 이시원에 이르렀을까. 지난 4일(목) 이시원 배우를 만나 그의 그리운 기억을 되짚었다.

※이시원 배우는 2012년 〈대왕의 꿈〉으로 데뷔했다. 〈미생〉,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본 대로 말하라〉 등에서 연기했고,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고 있다. 서울대 학부(경영학·인류학)와 석사(인류학)를 졸업했다.
※이시원 배우는 2012년 〈대왕의 꿈〉으로 데뷔했다. 〈미생〉,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본 대로 말하라〉 등에서 연기했고,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고 있다. 서울대 학부(경영학·인류학)와 석사(인류학)를 졸업했다.

“경영극회에서 활동하며 참 많이도 싸웠다. 별것도 아닌데, 대사 하나하나에 투닥거렸다.” 이시원 배우는 “웃으며 할걸 왜 그렇게 씨름했나 싶다”라며 멋쩍게 말했지만, 그 말은 후회보다 그리움에 가깝게 들렸다. 학부생 이시원이 최선의 극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했을지, 그러니 지금 그 시절이 그에게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지 짐작케 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4년간 경영대 연극 동아리 경영극회에서 활동했고, 그 경험은 여러 갈림길 끝에 배우를 업으로 삼은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입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정말 생뚱맞았다. 대개는 선배들이 부추겨서 동아리에 들거나 친구들과 함께 입부하지 않나. 나는 아무에게도 입부를 권유받지 않았는데 혼자서 들어갔다. 동아리방이 어디인지 묻고 무작정 찾아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당시는 실내에서 흡연하는 것이 익숙한 때였고 지하라 천장이 낮아서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몇 명이 서 있었는데 얼굴이 가려져 안 보일 정도였다. (웃음) 그래서 “안녕하세요. 저 연극하고 싶어서 왔는데요”라고 말했고 그게 시작이었다. 다들 황당해 하더라. 웬 멀쩡한 애가 혼자 걸어 들어오니까.

원래 연기에 흥미가 있었나. 

연기보다도 영화와 연극 그 자체를 좋아했다. 어찌 생각하면 그래도 이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매 주말마다 영화를 봤고 중학교 때 이미 영화관 VIP 고객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경쟁이 치열하지 않나.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영화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다. 그랬으니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동아리에서 4년이나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냥 재미있었다. 배우는 3일만 해도 못 벗어난다고들 한다. 그것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극을 올리기까지는 무척이나 힘들다. 그런데 극을 내리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그 잠깐을 위해서 한 학기를 바쳐 열정을 쏟았다. 연기가 그렇다. 준비할 때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찍고 났을 때의 홀가분함과 성취감 때문에 연기를 계속하는 것 같다. 

동아리를 떠올리면 무엇이 기억나나.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단골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구하고 그랬다. 제작비가 부족하니까 자주 가던 가게 사장님들께 손을 벌렸다. 당연히 잘 안 주신다. 그러니 쇼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선배들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연극 홍보한다고 포스터도 붙이고 일일 주점도 열고. 

아무래도 제일 즐거웠던 건 두레문예관의 연습실을 빌려서 다 함께 연습할 때가 아니었을까. 항상 반복되는 일이 있었다. 다들 살을 뺀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들 한다. 그런데 역시나 매번 먹는다. 쟁반 짜장이나 짬뽕을 시켜서 다 같이 먹었다. 안 먹을 수 없지 않은가. (웃음) 모두 목표는 다이어트인데,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는 연습 기간이었다. 그렇게 동고동락했다.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시원 배우는 “나는 마음이 동하면 저지른다”라고 말한다. 이 배우에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삶의 원칙이고 방향이었다. 학문과 연기,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꽤나 어색한 조합이지만 그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석사 졸업을 목전에 두고 연기에 뛰어든 것도 모두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이었다. 무작정 동아리실의 문을 두드리고 4년의 시간을 열정으로 채웠듯, 그는 망설임과 후회 없이 공부하고 연기했다.


어떤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나.

고등학생 때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그리고 학부 때 박순영 교수님의 ‘마음의 진화와 문화’ 강의를 들으면서 진화심리학에 흥미를 느꼈다. 대학에 와서 무얼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진화심리학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재미있었다. 학부 때보다 대학원이 훨씬 재미있었다. 학부에선 교수님이 훌륭한 논문을 요약해 강의를 하고 학생은 그것을 외워 시험을 보지 않나. 이걸 음식과 요리에 비유하자면, 학부 강의는 훌륭한 요리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시식하게 하고 레시피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낸다. 설탕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가, 이 음식에 들어가지 않은 재료는 무엇인가, 등등. 하지만 대학원에선 비록 보잘것없는 요리라도 직접 해본다. 김치찌개든 달걀말이든 뭐가 됐든 본인이 실제 요리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공부가 더 좋았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

대학원을 나오지 않았다면 인간적으로 덜 성숙되지 않았을까. 자칫 잘못했으면 피상적으로 살았을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것들, 그러니까 돈 많이 벌고 좋은 학교 나오는 등등의 물질적이고 피상적인 형태로 인생이 흐를 뻔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경험하며 공부하는 재미를 느꼈다. 그것이 값지다. 스스로 생각하고 꾸준히 배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학문을 더 잇지 못해 아쉽지 않나.

글쎄.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만약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그때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 되고, 그럴 생각이다. 공부를 그만둔 것도 아니다. 무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에, 비는 시간에 여러 방법으로 강의를 듣는다. 사이버 대학과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다. 요즘은 『논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석사 과정 중 연기를 시작했다.

나는 선택을 할 때 큰 고민을 하거나 오래도록 고민하지 않는다.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시작하고 저지른다. 많은 것을 그렇게 시작했다. 사업을 시도하기도 했고, 배우를 하며 구두를 디자인해보고 싶어서 학원에 다니고 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때도 그랬다. 졸업도 하기 전이었는데 무작정 신림동 근처 연기학원에 찾아가서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다닌 지 한 달 됐을 즈음인가 단체로 오디션을 봤다. 그때 기회를 얻어서 한 달 만에 데뷔를 했다. 그게 〈대왕의 꿈〉이었다. 

연기자로서 보람을 느끼나.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그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 연기자로서 크게 기쁘다. 작은 배역이었지만 〈미생〉에 출연한 것이 그랬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드라마의 일부분을 차지한 것이 아니겠나. 작품은 퍼즐 같은 것이다. 한 사람, 그러니까 한 조각이 빠지거나 어긋나면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그 퍼즐 한 조각이었다는 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에 참여한 것도 기뻤다. 

“어떤 배역을 맡을지 다음이 기대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비슷한 배역만 맡는다면 시청자들은 지겹고, 나는 타성에 빠지지 않을까.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남고 싶다.” 보다 다양한 인물로 연기하길 바란다는 이야기지만, 그가 살아온 생애가 꼭 그렇게 들렸다. 이과 고등학생에서 경영대생으로, 사회과학에 매력을 느껴 인류학 전공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으로, 다시 연기를 꿈꿔 배우의 길로. ‘하고 싶으면 한다’는 일념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지루할 틈 없이 삶을 개척하는 그는 다음 배역뿐 아니라 미래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사람이다.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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