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정선옥 인문대 강사ㆍ서어서문학과

진정한 내 삶은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나이 먹어도 철들지 못한 영혼에게 책읽기의 여정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조금 잔인한 일이다.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책을 찾아 편력을 했고, 하고 있다. 낙서 가득한 내 영혼이 그나마 책에 의해 정화되는 지복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예상했던 것 만큼 수월하지만은 않다. 편의를 위해 일단은 독서의 범위를 대학시절로만 축소해 놓고 보기로 한다.

모든 젊은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가장 난세라고 여기겠지만 우리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에도 내 기억으론 분명 험하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절이었다. 물론 당장의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는 빛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세상이나 타인의 삶에 대해 아주 무심한 예외적인 친구들 몇 명을 제외하고 당시 우리 대부분은 수업과 시험을 거부하고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중과 지식인』, 『페다고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같은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며 보낸 시간들이 더 많았고, 자주 매캐한 최루탄 가스 속에서 숨이 넘어갈 듯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 시기에 함께 읽던 책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는데 그것은 마치 자기 스스로 탯줄을 끊고 세상에 마주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시절은 봄날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개나리의 아름다움을 보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캠퍼스 가득한 라일락 향기에 젖는 것 자체에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으며, 불쑥 사고처럼 찾아오는 연애 감정이나 애인마저 등 뒤로 숨겨야 할 것 같은 묘한 죄의식을 지닌 시기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연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이른바 청춘이었던 것이다. 몰래한 연애처럼 혼자서 몰래 읽던 책들도 있었는데 주로 내 손길은 시집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철학자라기보다 시인이었던 니체의 번뜩이는 문장들에 오랫동안 탐닉했고, 보들레르, 엘리어트, 김광규, 김수영, 황동규, 김승희,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의 시구들에 혼자 자주 취하곤 했다. 언어는 푸석거리고 비틀거리는 내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 같았다. 그 동아줄을 타고 저기 위 보이지 않은 곳에 올라가 보는 것이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로 고민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됐다.

졸업 후 직장에 취직해 앞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길 원했던 가족의 소망과 인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었던 사치스런 나의 욕망이 점점 심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그즈음 원서로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잡아든 책이 두 권이나 되는 두툼한 『돈키호테』였다. 의무감에서 시작한 책 읽기에는 꼬박 한 달쯤 걸렸던 것 같다. ‘깨어 죽고 미쳐 살다 (Morir cuerdo y vivir loco)’라는 돈키호테의 묘비명을 읽으면서 평생 미친 듯이 몰두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한 인생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꿈에서 반짝이는 눈의 세르반테스를 만났다. 시대는 끊임없이 그를 배신했으며, 실패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결코 무릎꿇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희망으로 빛나는 눈을 포기하지 않았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나는 세르반테스가 내민 손을 잡고 기꺼이 내 운명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써 놓고 보니 참 시시한 글이 되었다. 이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나를 지나치게 탓하지는 말길! 나는 아직 길 위에 있고 절대의 책, 절대의 언어를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기다리며 사라지듯 살아가고 있으니.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