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이범희 교수(전기·정보공학부)
이범희 교수(전기·정보공학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133동)의 건물 입구에서부터 출입문 앞에 놓인 로봇이 눈에 띄었다. 출입구에서 몇 걸음 안 가 이범희 교수(전기·정보공학부) 연구실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이 교수가 우연히 문밖으로 나왔고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에 매우 만족한다는 뜻을 내비치는 그였다. 

Q. 2008년부터 약 2년 동안 서울대 정보화본부장으로 재직했다. 임기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정보화본부장 재직 시절, 서울대에서 예비군 명단과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돼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한 본부 직원이 첨부파일에 그 정보가 있는 줄 모르고 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교육부, 감사원,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등에서도 어떻게 된 것이냐며 연락이 올 정도로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정보화본부장으로서 학내 정보관리책임자 60~70명을 본관 대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걸 주의해야 할지, 대처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논의했다. 이로 인해 서울대가 당시 사건 해결을 위해 긴급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에 알릴 수 있었다. 사태 해결 이후 그 본부 직원으로부터 “잘 해결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Q. 로봇공학자임에도 인문학인 신학을 오랫동안 공부했다. 신학 공부가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A. 로봇 공학을 공부하다 보니 결국엔 인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로봇을 만들 때 인간이 얼마나 오묘한 작품인지 알게 됐다. 만약 내가 공학만 공부했다면, 평생 살아가며 사건의 한쪽 면만 봤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을 배움으로써 사건을 인문학적 관점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와 같은 공학적 질문에서 벗어나, ‘미래에도 로봇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인문학적 질문도 하게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의 즐거움도 알게 됐다. 그래서 내 인생에 가장 잘했던 일을 꼽으라면 신학을 공부한 일을 꼽을 것이다. 신학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래서 삶이 행복했다. 로봇공학자들도 가능하면 인문학이나 신학을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로봇 알고리즘 중 인간과 비슷한 알고리즘이 있나?

A.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한 알고리즘은 없다. 사람들은 10~20년이면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건 껍데기를 모사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일례로, 사람은 오감이 존재하고 자극에 대해 즉각 반응하지만, 컴퓨터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5살 아이에게 컵을 가져오라고 하면 잘 가져오지만, 로봇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이런 작업조차 어려운데 로봇이 인간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반복적인 작업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인간과 로봇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로봇에서 말하는 지능은 연산을 빨리해낸다는 의미에 가깝기에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따라오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Q. 로봇공학자로서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나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와 같이 미래를 표현하는 여러 말이 있지만, 정확한 표현은 ‘컴퓨터가 지배하는 사회’다. 로봇은 하나의 동작을 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주가 되는 것은 결국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인공지능 또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도 사실상 몇백 대의 슈퍼컴퓨터와 이세돌의 두뇌의 대결이었다. 이에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범희 교수는 가장 우수한 학생 및 동료들과 평생을 보냈다며 더는 아쉬움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끝자락에서도 자신은 행운아였고 넘치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그가 삶의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로봇공학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로봇공학에 대한 지나친 환상보다는 그것에 근간이 되는 기술 하나를 깊게 연구했으면 한다”라는 조언을 남겼다.

사진: 송유하 기자 yooha614@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