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이 시간을 직조하는 방법
크리스토퍼 놀란이 시간을 직조하는 방법
  • 박지민 학술부장
  • 승인 2020.09.13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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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간을 따라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위기에 빠진 극장에 관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영화 〈테넷〉이 개봉한 것이다. 〈테넷〉은 한국에서 개봉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겼고,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하다. 분명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도, 줄거리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놀란의 전작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이 개봉했을 때도 나타났다. 그가 관객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방식은 ‘시간’에 손을 대는 것이다. 놀란은 ‘시간의 마술사’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비틀어 작품에 자신만의 색을 부여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자신의 영화 속 시간에 어떤 마술을 부렸는지 알아보자.

 

시간의 중첩: 〈인셉션〉

〈인셉션〉의 핵심 설정은 기계 장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꿈을 공유하고, 꿈의 세계를 변형하며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꿈으로써 더욱 내밀한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들에 기초해 주인공 일행이 꿈 속의 꿈 속의 꿈까지 들어가 대상에게 특정한 생각을 심어 넣는 ‘인셉션’ 작전을 펼치는 것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나아가 놀란은 현실과 꿈 사이에 시간의 상대적 속도를 다르게 설정해 플롯을 복잡하게 만들고 사건을 다층적으로 구성한다. 영화 속에서 꿈의 시간은 현실보다 20배 느리게 흐르고, 더 깊은 단계의 꿈으로 들어가면 이전 단계의 꿈보다 또 20배 느리게 흐른다. 현실에서 1시간이 흐를 때 꿈에서는 20시간이 흐르며, 2단계 꿈에서는 400시간, 3단계 꿈에서는 8,000시간이 흐르는 식이다.

세 단계의 꿈이 동시에 진행되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놀란은 교차 편집을 통해 여러 단계의 시간을 유기적으로 구성해 낸다. 1단계 꿈에서의 10초가 2단계 꿈 속의 호텔에서는 3분가량의 시간이 되고, 3단계 꿈의 설원에서는 한 시간이 된다. 이때 인셉션 작전의 성공 여부는 3단계 꿈에 달려있기에 서사는 설원에서의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설원에서의 장면만 계속 나온다면, 관객들은 해당 장면이 3단계 꿈이라는 사실을 잊게 될 것이다. 여기서 놀란은 영리하게 세 꿈의 장면을 끊임없이 교차시켜 길이가 다른 사건들이 같은 시점에 발생한다는 점을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예컨대 설원에서의 작전 수행 장면 틈틈이 1단계 꿈에서 주인공 일행이 타고 있는 밴이 다리에서 떨어지고 있는 장면과 2단계 꿈에서 경비와 대치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또 놀란은 1단계 꿈에서 밴이 떨어질 때 2단계 꿈이 무중력 상태가 되고, 설원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는 연출을 통해 세 세계의 시공간이 맞물려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킨다. 이런 교차 편집은 장면의 생생함과 박진감을 극대화하고, 관객은 혼란스러운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고 느낀다. 비행기에서 잠에서 깨 현실로 돌아오는 결말 부분에서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꿈의 세계로부터 현실 세계로의 복귀를 경험하게 된다.

 

시간의 수렴: 〈덩케르크〉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특이한 점은 영화 초반부에 ‘잔교(棧橋): 일주일’, ‘바다: 하루’, ‘하늘: 한 시간’이라는 자막을 통해 영화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진행될 것임을 명시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점을 기준으로 덩케르크 해안에서 1주일의 시간을 버티는 육군 병사 ‘토미’, 영국에서 하루 동안 요트를 몰고 군인들을 철수시키러 가는 ‘도슨’,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타고 한 시간 동안 덩케르크로 향하는 ‘파리어’가 각기 다른 시점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놀란은 이를 시간 순서대로 재현하는 대신 길이와 서술자가 다른 세 개의 시간을 잘게 잘라 영화 곳곳에 배치했고, 이에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오가며 진행된다. 도슨이 영화 초반 침몰한 배에서 구조한 육군 소위는 어뢰를 맞은 배에서 탈출한 토미가 구명정에 타는 것을 제지하면서 영화에 다시 등장한다. 시간상으로는 그가 토미를 구명정에 태우지 않은 사건이 도슨에게 구출되는 사건보다 앞서지만, 영화상에서는 순서가 역전된 것이다. 한편 하나의 사건이 여러 시점에서 교차하기도 한다. 기뢰제거함 상공에서 파리어가 독일군 폭격기와 교전하는 장면은 파리어의 시점에서 먼저 제시된 후 도슨과 토미의 시점에서 각각 다시 나타난다. 한 사건이 영화에서 다른 시점을 통해 세 번이나 등장하는 것이다.

놀란이 영화의 시간을 순행적인 흐름과 어긋나게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영화상의 시공간을 세 개로 분절시킴으로써 각 시점의 서술자들은 전쟁을 오롯이 개인의 시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토미는 바다와 하늘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른 채 눈앞의 생존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나머지 서술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인물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절박감이 증폭되고, 이는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또 어지럽게 배치된 시간대는 전쟁이라는 대재앙의 혼란을 표상하기도 한다. 전쟁의 참혹함은 정갈하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시간 배치는 모든 시간이 수렴해 다중적 시간 구조가 해체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세 시점에서의 노력이 모여 덩케르크에서 병력이 철수에 성공할 때, 뒤이어 토미가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을 낭독할 때, 관객은 종래의 전쟁영화에서 찾기 힘든 인류애적 메시지를 느끼게 된다.

 

시간의 공존: 〈테넷〉

〈테넷〉은 ‘인버전’이라는 설정을 통해 시간의 순행과 역행을 공존시킨다. 인버전은 핵분열의 역복사로 인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인버전된 총알은 벽에 박혀 있다가 다시 총구로 돌아오고, 인버전된 사람은 되감기를 한 것처럼 뒤로 달려간다. 작중 등장하는 회전문은 그를 지나는 것들을 인버전시킨다. 만약 시간을 순행하던 사람이 이 회전문을 통과한다면 그는 시간을 역행하게 되고, 역행하던 사람이 회전문을 통과하면 다시 시간을 순행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간 역행은 다른 영화에서 나오는 시간 여행과는 엄연히 다르다. 10년 전의 과거로 가고 싶다면 회전문을 통과하고서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회전문을 통과해야 한다. 회전문을 이용하면 순행 시간과 역행 시간의 인물이 한 사건에 개입하는 ‘시간 협공’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이 한 화면에서 공존한다는 점은 〈테넷〉과 전작들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영화 중반의 차량 추격 장면과 후반의 전투 장면은 순행과 역행이 맞물린 시간 협공이 치열하게 펼쳐지면서 관객이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서사가 진행된다. 많은 관객이 이런 극단적인 복잡성과 불친절함 때문에 〈테넷〉을 혹평한다. 하지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작중 대사처럼, 핵분열의 역복사가 무슨 뜻인지, 정확한 시간의 순서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가는 차와 뒤로 달리는 차가 한 도로에 공존하고, 전복돼 있던 차가 일어나고, 무너져 있던 건물이 세워졌다가 다시 무너지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계를 즐기면 된다. 놀란은 이 영화에 특별한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한을 표현했다. 〈테넷〉이 제공하는 시각적 쾌감의 극치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영화의 편린을 엿볼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우리 삶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을 독창적으로 비틀어 평범한 액션, 전쟁, 첩보 영화를 특별하게 재탄생시킨다. 놀란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묘사하는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놀란의 영화가 복잡하면서도 지적 유희를 주는 퍼즐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테넷〉에서 그는 숱한 기대와 압박에도 자신만의 불친절한 상상력을 고수했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런 태도가 더욱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놀란이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놀라운 마술을 연습해 올지, 부푼 마음을 안고 기다려 본다.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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