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21세기는 세계화 시대라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 올리며 차이를 가진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늘 너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이지만 그가 한국에서 지내 온 나날들이 결코 안온하지만은 않았다. 2014년 <비정상회담>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단정한 독일 청년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는 올해로 한국에 온 지 13년이 됐다. 처음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어의 사근사근한 발음에 매력을 느낀 순간부터, 방송 활동을 시작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지난한 시간을 거쳐 오늘날 다재다능한 방송인 ‘독다’(독일 다니엘)로 사랑받기까지. 그는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왔을까. 어느덧 적지 않은 방송 이력을 지니게 된 다니엘은 최근 <대화의 희열>, <역사저널 그날> 등 심도 있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약하며 사회 다방면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보여줬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국적과 문화권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가 지닌 편견을 돌아보게 하는 속 깊은 통찰이 스며 있다. 지난 8일(화), 다니엘 린데만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Q. 오늘날의 ‘독다’가 있기까지 언어 공부를 비롯해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다. 특히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데, 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독일 본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다. 그 학과는 원래 번역학과였는데, 요즘 <대한외국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 알브레히트 허배 교수님께서 당시 본 대학에 계셔서 그분께 한국어의 언어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역사적인 부분에 특히 관심이 많이 가더라. 그중에서도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서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방식을 주제로 학부 논문을 작성하게 됐다. 자연스레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분단, 한국전쟁, 일제 강점기까지. 역사는 끝도 없이 이어져 있기에 이는 세계사, 국제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이어진 관심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됐다. 

 

Q. 방송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원래 방송 활동을 하고자 했나?

그런 건 아니다. 타이틀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랫동안 나에게 혼란을 줬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원래는 박사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재정이 여의치 않아 진학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후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게 됐고 초반 두 달까지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 출연을 이어가고 점차 관련 일정이 많아지면서 방송 활동에 보람을 느끼게 됐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방송 활동에 애정이 생겼고, 그 역동적인 생활을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회사는 그만두고 방송을 계속하면서 박사 준비를 하려 했는데, 하다 보니 방송 활동이 내게 너무 잘 맞는다고 느껴 점차 비중이 방송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자격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내 타이틀, 직업은 무엇이며 나는 누구를 대표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오랫동안 고민했다. 지금은 그런 정체성 혼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상태다. 나는 독일 출신 방송인으로서 나만의 몫을 하고자 한다. 나는 한국인들이 잘 몰랐던 독일인의 모습,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며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에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하도록 해 사유의 여지를 넓히는 것이 내가 외국인 방송인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측면이라 생각한다. 

 

Q.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비교적 초창기부터 그런 방송의 흐름을 경험했는데, 문화 교류를 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와 윤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방송계에서 자주 논란이 발생하는 부분이고,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과거의 소위 ‘국뽕’ 방송에 비해 현재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상황, 다양한 주체들과 결부되는 문제라 결코 쉽게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와 외국인 각자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측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의 경우 ‘성급한 일반화 없는 환영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거에 비해서 백인은 환영하고 다른 인종은 그렇게 대하지 않는 차별적인 경향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백인은 다 이럴 것이다, 흑인은 다 저럴 것이다 하는 일반화의 사고방식은 다소 남아있는 듯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들도 방송 등을 통해 자신들을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 없도록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실 일반화와 편견은 인간의 방어적 본능이기도 하다. 일반화의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손님으로서 예의와 배려를 갖추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고 생각한다. 이처럼 양쪽의 노력이 모두 있어야 평화로운 문화 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

 

Q. 꼭 필요한 노력이라 생각된다. 다만 최근에는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늘 손님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한국인’, ‘외국인’이라는 표현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가두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요컨대 외국인이라면 아무리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더라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외국인’으로서 경험하는 것이 많다. 미국, 독일은 이민 국가 1, 2위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정착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생김새가 어떻든 그들이 영어나 독일어를 한다는 것이 별로 신기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그 정도의 다문화 사회가 아니고 외국인 비율이 그처럼 높지도 않다. 그렇기에 한국어를 하는 백인, 흑인을 보고서 놀랄 수도 있고 칭찬할 수도 있고 고마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살이 13년차지만, 여전히 나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면 새삼 놀랍다. 그런 반응이 아직까지 자연스럽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것을 반드시 ‘선 긋기’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비슷한 이유로 최근 독일에서는 ‘외국인’(Ausländer)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문화권을 배경으로 둔 함께하는 시민’(Ausländische Mitbürger)이라는 좀 더 포용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외국인’은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두 단어의 사용에서 느낄 수 있는 분명한 태도의 차이가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의 또 다른 맥락이 있으므로 이런 표현 자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런 개념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존재를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차이’에 대한 다니엘의 생각이 궁금하다. 차이는 쉽게 차별이 되고 수많은 갈등을 낳는다. 

물론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차이란 너무 재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차이, 다양성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든 사람들이 독일 다니엘처럼 생겼다면 세상은 너무 심심할 것이다. (웃음) 다양한 인간이 모여야 서로 배울 것도 많고 생각도 교류할 수 있다. 차이는 너무너무 중요하다. 

우리는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목격하고서 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서로서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을 예방하려면 각자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선진국’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표하고 싶다. 분야마다 다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어떤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난 잘 모르겠다. 사람도, 나라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좋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 평화와 행복이므로 같은 목표를 두고 그것을 달성하는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

 

Q. 최근 SNS 등을 통해 환경 관련 캠페인을 왕성하게 홍보했다. 다니엘의 가치관에서 환경 문제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일에서는 요새 ‘Flugscham’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한국어로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뜻이다. 독일 고등학생들은 수능을 치고 나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띄우는 것이 엄청난 대기오염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자각하고서는 ‘Flugscham’을 느껴 최근에는 학생들이 자기들 동네에서 텐트 치고 휴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걸 듣고서 나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휴식을 취하려던 이번 휴가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환경 문제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모두가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오늘날 모두들 전염병으로 인한 고난을 겪고 있는데 이 역시도 큰 틀에서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위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성을 깨닫고 생활 속에서 환경 보호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Q. 개인적인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평화와 행복을 이루기 위한 다니엘만의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가치관이 무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려니 어렵다. 다만 나는 꿈이 미래를 일러준다면 가치관은 현재를,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으니, 사람들이 정신적인 행복을 위한 가치관을 수립했으면 한다. 나도 이전에는 쫓기듯이 살았는데, 최근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책 읽고 음악 듣고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정말 행복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소소한 행복과 평화를 위한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꾸만 욕심을 품는 것은 헛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바람 때문이다. 계속 죽음을 생각하고 허무를 두려워하며 언제 이 생을 뜨게 될지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헛되거나 헛되지 않은 인생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나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잘 생각해 보면 욕망을 어떻게 채울지 기준을 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Q. 여전히 젊은 대학생들은 혼란스러운 사회와 막연한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조언하자면.

젊은 대학생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이들이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고뇌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그만큼 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의 모순을 털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었던 경우가 많다. 

힘들 때도 많겠지만, 지금 당장 정답을 찾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대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고민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에서 내 꿈을 바로 이뤄야겠다는 강박을 지닌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되, 조급해하지 말고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누구나 평화와 행복을 말하지만, 그 의미를 마음 깊이 헤아리고서 삶 속에 실천적인 태도를 새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다니엘은 곧바로 “지금처럼 지낼 것 같다”라며 의미 있는 방송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오늘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그의 입가에는 자기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고, 실천적인 노력 끝에 그 가치를 실현해 낸 이들에게 피어나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사진: 김별 기자 dntforget@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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