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초등돌봄교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0.84명.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또다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현상의 배후에 있는 사회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중에도 부실한 보육체계가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힌다. 이에 지난 6월과 8월, 현재 시·도 교육청 소관인 초등돌봄교실 운영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온종일돌봄특별법’이 잇따라 발의됐다. 돌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지자체 중심의 통합적 돌봄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안을 두고 교사와 돌봄전담사, 학부모의 의견이 충돌하며 교육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2004년 시작된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돌봄, 무엇이 문제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초등학교는 보육시설이 아닙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 담당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다시는 돌봄 업무를 맡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1학년과 2학년, 두 반으로 운영하는 돌봄교실 업무에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긴급돌봄 업무까지 추가돼 수업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는 “돌봄 자체는 초등돌봄전담사가 하지만 돌봄교실을 운영하기 위한 모든 행정 업무는 고스란히 담당 교사의 몫”이라며 “학생 배정과 특별 프로그램 운영, 돌봄전담사 및 방과후 강사 관리, 학부모 민원 처리까지 교사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라고 호소했다. 특히 돌봄교실에서 학교폭력이 자주 발생해, 학부모 민원 처리와 학생 생활지도를 하다 보면 정작 반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에 교육청에서는 돌봄전담사에게 행정 업무를 일부 위임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A씨는 “인력과 예산이 제한된 학교에서 온종일돌봄을 운영한다면 교육과 보육의 질 모두 담보할 수 없다”라며 “돌봄의 책임을 학교에서 덜어내 교사가 교육에 힘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돌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 박미숙 씨 또한 초등돌봄교실의 시스템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사가 매일 한 시간씩 돌봄교실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고 방학에도 출근해야 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부담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돌봄이 확대되는 추세를 고려하면 다시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그는 초등학교에 돌봄이 들어온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와 같이 교육과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지 보육시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미숙 씨는 “돌봄교실은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졸속으로 초등학교에 설치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장은 진통을 겪을지 몰라도 본래 복지의 영역인 돌봄을 지자체로 이관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보육체계와 교육체계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요”

경기도 용인의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초등돌봄전담사 전주영 씨의 업무는 오전 열한 시 반에 출근해 간단한 행정처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돌봄교실에 오면 숙제를 지도하거나 간식을 지급하고,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특별 프로그램 수업을 보조한 뒤 오후 다섯 시에 아이들을 하교시키면 일과가 끝난다. 그는 11년째 돌봄교실을 운영해 온 베테랑이지만, 일이 손에 익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초등돌봄교실이 법제화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담당 교사에 따라, 학부모의 민원에 따라 업무 방식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 씨는 “정해진 매뉴얼이 없으니 대응하기가 어렵다”라며 “당장 내년에 일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운영에 있어 법적 근거가 없는 돌봄교실은 학교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그는 “돌봄전담사가 교육공무직이 되기 전 돌봄교실은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였다”라며 “지금도 가끔 교사들이 같은 학교 학생인데도 돌봄교실의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전 씨는 초등학교에서 보육과 교육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일 뿐만 아니라 사회성, 인성 등을 기르는 공간”이라며 “보육도 교육의 일환이기에 학교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돌봄교실의 불안한 위치는 돌봄전담사들의 고용 형태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일제(하루 8시간)와 시간제(하루 4시간, 6시간)가 통일되지 않아 전담사별로 급여와 처우가 천차만별이다. 경기도 하남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전담사 B씨는 “근무시간이 달라도 맡은 업무는 동일하다”라며 “업무량과 급여가 비례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돌봄전담사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교실이 지자체로 이관된다면 전담사들의 고용 불안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B씨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지자체에 돌봄이 넘어가면 분명 민간에 위탁될 것”이라며 “영리를 우선시하는 민간의 특성상 돌봄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전담사에 대한 처우도 나빠질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돌봄전담사들이 포함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철회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11월 돌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2004년 시작된 초등돌봄교실은 지금까지도 법제화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04년 시작된 초등돌봄교실은 지금까지도 법제화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누가 하든 잘만 돌봐 주세요”

지난달 14일 학부모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온종일돌봄특별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부모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법안”이라 비판했다. 이들은 “학부모와 학생은 교육부의 책임 아래 학교라는 공간에서 안전권을 보장받으며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며 “돌봄교실을 학교에 설치하되 그 책임과 권한을 교육부와 지자체가 나눠 갖겠다는 것은 ‘핑퐁게임’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가장 믿음직스러우며, 지자체로 돌봄이 이관되면 책임 소재가 불투명해지고 돌봄의 공공성을 해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든 학부모가 온종일돌봄체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돌봄 주체가 누가 되든 ‘잘만 돌봐 준다면’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초등돌봄교실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C씨는 “변화가 그리 달갑지는 않다”라면서도 “돌봄을 누가 운영하느냐는 사실보다는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돌봄의 질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현행 돌봄교실에 대해 “돌봄의 학습적인 부분을 더 강화하고 운영 시간을 일곱 시 이후까지 늘려준다면 지금보다 이용하기 좋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처럼 점점 많은 학부모가 돌봄의 질적, 양적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온종일돌봄특별법에 대해 “통합적인 돌봄체계를 확립하려는 방향은 옳으나, 법안 발의 과정에서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다”라고 평가하며 “지금이라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초등돌봄교실은 수많은 문제를 초래하며 결국 누구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정부는 ‘책임지고 돌볼 테니 낳기만 하라’라는 약속이, 성급한 법안 마련이 아니라 돌봄에 대한 사려 깊은 정책을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합계출산율: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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