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낳은 장애인
‘사회’가 낳은 장애인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10.1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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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책 | 장애라는 사회의 규정을 넘어서는 『장애학의 도전』

저자는 장애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장애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나라의 토론 프로그램들이나 여러 공론장에서는 장애 문제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 저자는 장애 문제가 ‘너희’(타자)의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의학, 재활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등 지금까지의 장애와 관련된 학문은 장애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다뤘으며 장애를 학문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다. 반면, 책에서 소개하는 장애학은 장애 관련 논의만 다루는 개별학문으로, 크게 사회적·학제적·실천 지향적·해방적 성격을 갖는다.

장애학의 개척자들은 기존 장애 관련 연구의 ‘개별적 장애 모델’에 문제점을 느꼈고 ‘사회적 장애 모델’을 개발했다. 즉, 장애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영어 단어인 ‘disabled people’을 직역하면 ‘할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수동적 의미가 된다. 이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울러 『장애학의 도전』은 20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 사회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신체적·정신적인 불편함을 겪는 사람은 있었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장애’라는 개념도 사회가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프레임을 씌워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장애학은 장애인 관련 논의를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다.

한국의 장애인 사회 현실은 개발도상국만큼이나 어려운 실정이다. 오랜 기간 차별을 받아 온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2007년에서야 제정됐다.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한 지 15년이 채 안 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중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며 이들은 타인에게 생활 대부분을 의존한다. 하지만 서구 국가들 내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노르웨이에서는 ‘시설해체법’이 시행돼 발달장애인들은 각자의 지역사회 속 자신의 주거공간에서 거주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중앙 정부가 각 자치구에 지원해야 한다. 비슷한 불편함을 겪고 있더라도 우리나라와 서구 국가의 발달장애인 자립률이 굉장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런 서구의 예시들이 장애 해방 운동의 출발점이자 사회적 장애 모델의 핵심이라고 밝힌다. 

이어 저자는 ‘장애인에게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단순히 ‘장애인’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장애인은 장애인인 동시에 노동자 계급, 여성, 동성애자, 인종적 소수자, 남성, 이성애자 등이 모두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사실상 ‘장애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낙인찍힌 채로 살아가게 되므로, 정치적 발언권은 인정받지만 실제로 정치적 정보나 공론장에서 배제되는 ‘일상·정치적 대표불능’이라는 부정의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부정의는 사회가 그들을 단순히 ‘장애인’으로 규정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투표소와 각종 정보에 대해 보장되지 않은 접근성, 공론장에서의 장애 이슈 배제, 산전 검사나 선별적 낙태 상담 과정에서 장애인이나 장애인 부모들의 목소리 반영 절차 부재, 장애인 요구 대변 집회나 시위 억압, 온라인 매체에 대한 시청각 장애인의 보장되지 않은 접근권 등이 그 사례다. 이에 저자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인 이유를 묻지 말고,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회, 그리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장애인들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 한 그들은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모두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관계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장애 당사자주의 운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당사자주의’를 “자기대표권이나 자기결정권의 확장된 적용”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당사자주의 운동의 목표가 비장애인 세력에게서 복지 전달 체계와 권력을 탈환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장애인 문제에 있어 장애인 당사자의 이익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장애학의 궁극적 목표가 장애인 차별 철폐 내지 장애 해방이며 장애학이 주창하는 해방적 연구는 장애인에 대한 ‘편파성’과 ‘당파성’을 대놓고 추구한다고 한다. 이는 장애 당사자주의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며, 비장애인이나 부당함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억압받는 사람들과 장애인의 이익을 대변한다.

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뤄지는 장애인의 노동 문제는 그들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높은 생산성이 중시되는데,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미약한 사람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 점이 장애인이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의 만 15세 이상 장애인 중 약 60% 이상은 아예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고 그들의 고용률은 36.9%에 불과하다. 『장애학의 도전』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공공영역에서 보장돼야 한다는 ‘공공시민노동 시스템’을 제안한다. 공공시민노동을 심의하는 기준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의 조건 및 능력을 고려해 그 활동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하는가’이다. 이런 심의 기준은 장애인들의 활동이 쉽게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공시민노동 시스템을 통해 자신 나름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장애학의 도전』이 제시하는 장애학 개념을 유의한다면 여러 장애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일처럼 관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코로나 시대나 앞으로 찾아올 여러 위기 상황 속에서 장애인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424쪽

오월의봄

2019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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