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포퓰리즘, 민주주의
‘인민’, 포퓰리즘, 민주주의
  • 대학신문
  • 승인 2020.10.1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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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인민’ 범주를 빼놓기는 어렵다. 당장 ‘인민주권’이라는 개념만 해도 별로 어색할 것 없이 통용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민’은 입에 담기 불편한 말이 된 지가 꽤 오래여서 학술적인 담론을 제외하고는 잘 쓰이지 않는다. 서양에서 아마도 ‘the people’ 혹은 그에 상응하는 해당 언어의 단어를 쓸 만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민’, ‘시민’, ‘대중’ 등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저 번역이나 단어 선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마거릿 캐노반은 2005년에 출간된 저서 『The People』(『인민』, 김만권 옮김, 그린비, 2015)에서 인민 개념의 모호성을 세 차원에서 추적한다. 첫째, 인민은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인민주권의 인민처럼). 둘째, 인민은 구체적인 개인의 집합을 가리키기도 하고(영어에서 people을 복수 동사로 받을 때), 콕 집어 말하기 힘든 추상적인 집합체를 가리키기도 한다(관사 ‘the’를 붙이고 단수 동사로 받을 때). 셋째, 정치적인 힘과 구체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체이기도 하고(혁명의 순간에서처럼), 정치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이라는 높지만 모호한 지위를 갖기도 한다(헌법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할 때처럼). 캐노반은 이 다층적인 모호성이 분석의 어려움을 낳는 동시에 인민 범주의 정치적 생명력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人’과 ‘民’의 결합으로서 우리말의 ‘인민’이라는 단어는 위에서 말한 모호성을 꽤 잘 담아낸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더 널리 쓰이는 ‘국민’은 ‘인민’과 달리 이미 구성된 국가에 의해 호명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외연에서 사소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한편 ‘시민’은 주어진 권리와 의무의 체계 내에서 움직이는 법적 범주에 가깝기 때문에, 이러한 제약과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그 체계 자체를 (재)창조할 수 있는 정치적 범주로서 ‘인민’의 구성적 속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또 다른 표현 ‘대중’은 정치적 주체성과 행위자성을 담기에는 부족한 개념이고, ‘민중’은 특정한 사회경제적 범주와 연계가 강해 전체를 지칭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민’ 개념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전체로서의 정체성과 행위자성을 가진 집합적 정치 주체를 상상하기 어려워진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실 서양의 역사에서도 인민의 이미지는 별로 긍정적이지 못했다.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부터 ‘눈먼 다중’에 이르기까지 현란한 비유가 여럿 쓰였다.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는 있지만 무언가를 짓지는 못하는 에너지 덩어리의 형상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부정적 이미지의 인민 개념이 요즘 포퓰리즘에 대한 담론을 통해 다시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인민들은 정념에 휘둘리고 대중 선동에 취약하며, 사기꾼 같은 정치인들의 거친 언행에 희열을 느끼며 거리로 몰려 나온다.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의 상당수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인민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법질서와 제도, 정치 과정을 정비해 잘 관리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처방이 주를 이룬다. 반대로 인민의 정치적 주체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또한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통해 인민을 구성해 내고 투쟁을 위한 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주목하면서, 단일적이고 반다원적인 인민의 전통적인 형상을 다시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인민 범주를 축출하려는 포퓰리즘에 대한 표준적인 비판과, 투쟁의 주체로서 인민을 구성해 내는 데에 몰두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대립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인민이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가지는지, 이들이 정치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양식을 보다 유연하고 다층적으로 구성해 낼 수 있을지의 질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고민은 정치사와 사상사, 민주주의의 실천과 이론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요청한다. 물론 ‘인민’이라는 단어를 되살리는 것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모호하고 논쟁적인 이 개념을 진입로 삼아 민주주의를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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