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옥 책임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

주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주거는 인간다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를 비롯한 사회 전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거에 대한 권리, 즉 주거권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적절한 주거를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거나 이를 개인의 능력으로 환원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주거권 침해의 사례로 지적되며, 엄격히 금지해야 할 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강제철거의 문제가 특히 그러하다. 이미 1980년대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럽게도 강제철거가 빈번히 자행되는 국가의 하나로 선정되는 오명을 남긴 바 있고, 이후에도 강제철거에 대해 국제사회의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개발사업에서 강제철거가 행해지고 있으며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강제철거의 관행이 보편화돼 있어서 철거대상자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수립을 사업 수행의 필수적인 요건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합의도출이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곧바로 물리력 행사에 돌입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강제철거의 근거가 되는 행정대집행법상의 절차를 준수한 합법적 행위는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다. 결국 현행 관련법이 OECD국가 수준에 걸맞는 인권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소치라 하겠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강제철거를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는 사업주체들도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고 끈질겨지면 편법적인 대안을 내놓고 합의를 이끌어내 왔다. 이러한 관행은 결국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왜곡된 통념을 재확인시키고 물리적 저항을 정식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철거반대투쟁을 조장한 측면마저 없지 않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강제철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강제철거를 무조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강압적인 수단이 남발되어 인권이 침해되는 폐해를 최대한 방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원칙들이 지켜져야 한다. 우선 모든 사람은 주택 점유형태 등의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적법한 법원의 명령 이외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철거, 퇴거, 이주하지 않을 권리를 갖도록 한다. 그리고 법원의 철거, 퇴거, 이주명령은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되어야 한다. 또한 철거의 집행은 지금처럼 철거용역이라 불리는 민간이 대행해서는 안되며 행정기관이 직접 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강제철거를 집행해야 할 경우에는 충분한 대책과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 긴급한 재난의 위험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달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간 여유를 주어야 한다.

세 번째는 철거된 주민이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대체 주거공간이 제공되어야 한다. 적절한 대체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도 두 가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하나는 가구 특성에 따라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주거를 제공해야 하며, 다른 하나는 철거 이전보다 주거수준이 더 열악해지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 요인에 의해 주거를 상실하게 되는 경우 이전의 주거수준에 상응하는 주거를 확보토록 하여 주거상실로 인한 불안정을 해소시켜야 하며 나아가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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