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줄’ 쥔 탓에 대학 자율성확보 어려워

84년 대학 자율화 조치가 이미 시행됐지만 현재의 대학은 여전히 ‘자율’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각종 평가와 함께 개혁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대학들에 권유하고 있으나, 이는 각 대학들에 있어 ‘권유’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특히 국립대학의 경우 권유의 이행 여부는 재정지원에 큰 영향을 끼치며, 그 중 서울대는 대학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 타 대학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더욱 사안이 중대하다.

교육부가 대학 정책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학 재정 편성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의 예산은 대학 내 교육부 소속국인 사무국에서 편성지침에 따라 예산항목을 결정하고 교육부와 기획예산처를 거쳐 국회의 의결을 받은 후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 내 정책에 대한 교육부나 정부 관계자의 영향력이 거세지게 된다.

특히 교육부가 재정지원평가를 실시할 때 대학 개혁을 위한 정책의 시행 여부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준비 없이 조급히 시행된 서울대 광역화의 경우 시행초기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됐으며 모집단위가 해마다 바뀌는 등 현재까지 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다. 또한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경북대, 영남대, 경상대 등에서 교수회가 의결권을 갖도록 학칙을 개정한 데 대해 “교수회는 심의권만 갖게 하라”는 내용으로 시정할 것을 요구하며, 행정적․제정적 제재 등 필요한 조처를 강구하겠다고 밝혀 교수들의 큰 반발을 샀다. 또 각 대학여건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총장이나 학장의 선출방식을 문제삼아 대학이 자율적인 운영체제를 구축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2002년 봄, 학생들이 본부 로비에서 광역화 반대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01~2002년을 뜨겁게 달궜던 모집단위 광역화는 교육부의 대학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

이렇게 교육부에서 재정을 매개로 대학 운영에 간섭하는 일이 많아지자 여러 교수들은 대학의 재정운영 방식 개혁을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제도가 ‘독립회계제’이다. 이를 실시하면 대학은 예산항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며,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게 돼 재정확보가 용이해진다. 그러나 교육부로부터 실질적인 자율성 확보여부와 독립회계제 운영에 필수적인 재정위원회와 같은 의사기구의 실효성 여부가 불투명해 독립회계제가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한 직원의 인사권이 교육부에 있어 업무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 전문직원들이 다년간 업무를 수행하는 외국 대학과 달리 우리 대학은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업무 효율이 매우 낮다는 평가다. 일부 교수들은 교직원의 인사권이 전적으로 대학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균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총장에게 인사권 등 행정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장을 견제할 수 있도록 국민, 교육부 대표자 등 외부인사가 포함된 위원회를 만들어 총장을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인문대 학장 이태수 교수(철학과)는 “대학이 독립법인이 되지 않는 한 대학 내에서 모든 직원을 채용, 관리하기는 쉽지 않으며 일부 사립대학의 예처럼 학내에 오래 머무는 직원이 오히려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며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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