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보건 의료 인력 수급 문제의 나아갈 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범유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보건 의료 인력 적정 수급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공공 의대 설립, 의사 면허 취소법과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가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대학신문』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안덕선 소장이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이들이 짚은 보건 의료 인력 증원 문제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봤다.

보건 의료 인력, 정말 부족할까?

토론회의 참가자들은 먼저 보건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성인 교수(연세대 예방의학교실)는 보건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통계자료가 사용자의 판단에 따라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2018년 OECD 자료에서 인구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를 봤을 때 한국(0.12명)이 미국(0.13명)보다 적다”라며 “이를 근거로 보건 의료 인력을 확충하자는 주장이 나온 상황”이라고 운을 뗐다. 장 교수는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는 인력인 출생아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를 보면 한국(17.3명)이 미국(15.5명)을 앞서기에 한국의 보건 의료 인력이 충분하다는 근거도 될 수 있다”라며 “통계 자료 하나를 토대로 한국의 상황을 진단해서는 안 된다”라고 분석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박정훈 연구원 역시 OECD 평균 지표만을 근거로 한국의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 연구원은 “공급 추계 연구 결과 어떤 기준점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의료 인력의 공급 전망은 크게 달라지겠지만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인구 구조·의료 접근성·국민 건강 수준은 국가별로 차이가 크기에 인구당 적정 의료진 수를 확정하기 위한 기준을 만들기는 어렵다”라며 “OECD 평균을 근거로 국내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증원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적은 게 아닌 쏠려 있는 것

참가자들은 보건 의료 인력의 문제는 부족이 아닌 불균형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절대적인 의료 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과 과목으로 인력이 편중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역 및 진료 과목에서의 불균형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라며 “시장 원리에 따라 인력의 분배가 결정되는 현 상황에서 단순히 보건 의료 인력의 공급을 늘린다고 불균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의사들이 지방 지역이나 필수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그만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안대로 공공 의대를 설립하고 지역 의사 제도를 만들어도 해당 의료인을 그 지역에서 평생 근무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기에 불균형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 이사는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의사들이 필수 과목을 전공하고 지역에서 개원할 경우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장성인 교수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업무 과중으로 인해 의료 인력 수급이 어려워진 와중 의료인들에게 기존보다 훨씬 많은 인건비를 제시하자 수급 문제가 완화된 것을 선례로 삼을 수 있다”라며 “정부의 강제가 아닌 의료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박정훈 연구원은 인력 수급 현황을 면밀하게 파악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의 ‘HRSA’, 캐나다의 ‘CIHI’, 네덜란드의 ‘NIVEL’처럼 여러 선진국에서는 별도의 면허 관리 기구를 통해 의사 인력 추계 분석을 전담함으로써 의료 인력 수급의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라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려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논의를 이어나가 정책적 협의를 이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하기 위해서는?

한국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희철 이사장 역시 정책적 협의가 문제의 해결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이사장은 “의료 인력 정원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을 분석할 별도의 전문 기구나 상설 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수립해 해결해야 한다”라며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 공급의 균형 확립이라는 목적 아래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짚었다.

한편 원만한 협의를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 간의 마찰과 불신을 먼저 회복할 필요가 있다. 성종호 정책이사는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큰 것 같다”라며 “정부와 협의를 위해 일정을 잡아도 정부 측에서 이를 연달아 취소하는 까닭에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정 협상까지 나아가도 항상 정부 측 단장이 결과를 통보하는 식으로 끝난다”라고 토로했다. 성 이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파트너십을 만들기 어렵기에 우선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을 거두고 신뢰감을 쌓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윤정 교수(아주대 의과대학)는 신뢰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의료계와 정부가 지속적인 협의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부 역시 대책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현재 정부는 수급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 중 하나로 의료 인력 증원이라는 카드를 고려하는 것”이라며 “의료계도 이런 취지에 공감함으로써, 극단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시내로 치료를 받으러 나가는 시골 어른들의 모습,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은 인력으로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일하는 의료진들의 지친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료계는 정부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원만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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