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꾸민 카페를 찾아 그럴듯해 보이는 배경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고르고 보정한 뒤 SNS에 사진을 올린다. 이렇게 업로드된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보다는 나만의 감성으로 꾸며져 ‘필터링’ 된 공간에 가깝다. 이처럼 SNS로 자신을 내보이고, 타인이 올린 사진을 관망하는 세태를 예술로 표현해낸 정고요나 작가의 〈Filtering〉 전시가 마포구에 위치한 CR Collective에서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파스텔 톤 색으로 칠해진 벽에 캔버스들이 걸려있다. 배경색에 맞춰 전시된 작품들은 마치 인스타그램의 피드(사진·영상을 남기는 공간)를 연상케 한다. 바닥에 놓인 세 작품과 천장에 연결돼 공중에 떠 있는 작품의 배치는 감상자가 전형적인 회화 감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감상자는 SNS가 추천한 게시물을 보듯 네모난 작품의 한 장면으로 빠져든다. 

사진 제공: CF Collective
사진 제공: CR Collective

정고요나 작가는 SNS가 인적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그 자체로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가 된 사실에 주목했다.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며 타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더욱 신경 쓰게 된 사람들의 ‘욕망’을 그려낸 것이다. 정 작가는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피하는 ‘교묘한 내숭’을 회화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는 SNS가 타인의 일상을 정당하게 훔쳐보도록 한다는 점을 포착해, 필터링된 작품을 관찰하는 감상자의 동시대적 ‘시각’도 전시에 녹여냈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 대부분은 ‘내가 보는 나’를 보여준다. 정고요나 작가는 실제 SNS에 올라온 셀프 카메라(셀카) 사진들을 골라 캔버스에 그렸다. 그 중 ‘나’를 보여주는 셀카 작품들 〈엷은 핑크빛 기억〉과 〈Hayley〉는 거리를 두고 바닥과 수직으로 배치돼 서 있다. 오프라인 현실 속의 ‘나’는 셀카 몇 장 속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 하나를 골라내는 자가 검열 과정을 거친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보정하고 필터를 씌운다. 이런 셀카는 내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 즉 이상향이다. 하지만 작가의 객관적인 붓질을 거치며 내가 신경 쓴 점들은 흐려진다. 생기를 더하기 위해 씌웠던 필터도 채도 낮은 물감 앞에서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다. 어쩌면 이 과정이 작가가 씌우는 두 번째 필터일지도 모른다. 카메라 렌즈, 화면, 캔버스를 넘어 감상자를 마주하는 듯한 인물의 눈빛은 전시장을 또 다른 가상 공간으로 뒤바꾼다. 

한편 ‘내가 보는 나’를 담아낸 셀카가 아닌, ‘타인이 본 나’를 그려낸 작품도 있다. 〈Midday Dream〉은 누군가의 잠든 모습을 눅눅한 질감을 살려 그려낸 작품이다. 옷자락의 잔주름, 피부 표현들은 절제돼 있고, 누군가의 자는 모습을 관망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Midday Dream〉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사진을 찍는 순간 ‘나’의 이상향을 의도적으로 담아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SNS에 올리는 순간 타자를 의식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사진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뿐 아니라 전시장에서 자신을 만나는 사람에게까지 합법적으로 자신을 관찰할 권리가 생긴다.

인물화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면, 일상 속 한 장면을 그려낸 작품은 감상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전시장 초입에 걸려있는 유화 〈Summer Reminiscence〉와 반대편의 〈햇살〉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여유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보여준다. 〈Summer Reminiscence〉는 이름 모를 공간이지만,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햇살〉은 물놀이를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청량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두 작품 속에서 지치고 바쁜 현실의 나는 사라지고 남들이 부러워할 일상을 보내는 내가 나타난다.

〈2Q20-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은〉은 현재 서 있는 어두운 커튼 뒤와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는 커튼 너머가 대비되는 작품이다. 진솔한 모습으로 무대 뒤편에 있다가도 무대로 나가면 가면을 쓰고 연극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의문에 대한 답은 코로나19를 맞닥뜨린 2020년의 상황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정고요나 작가는 “2020년은 우리에게 없는 해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2021년이 왔지만 2020년으로부터 비롯된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기도 했다”라며 “그럼에도 커튼 너머로 한 발짝 나아가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더욱 빛날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희망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전시회장을 나가는 감상자들은 자신들의 일상 세계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오늘 의미 있는 전시회를 다녀왔다며 SNS에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됐든, 전시 〈Filtering〉은 SNS에 게시되는 사진들이 나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임을 깨닫게 한다.

구효주 기자 altlghz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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