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보건대학원 석사과정)
노희경(보건대학원 석사과정)

좋아하는 작가가 단편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변하지 말아야 할, 변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나는 다소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 만물이 변하고 발밑이 불안해도 인간의 근원은 ‘건강’이라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노화나 죽음의 대척점에 있는 탄력 있고 무결한 이미지가 아니라, 생에서 안녕을 추구하는 과정이 건강의 영역이라 덧붙이고 싶다.

어쩌다 건강을 설파하는 사람이 돼버린 걸까? 관심을 가져온 대상은 대체로 인간과 그 사연이었다. 할머니와 살면서 비로소 건강이란 주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삼대가 같이 사는 환경이란 자연스럽게 내게도 노년이 닥칠 거란 엄중한 현실을 안겨준다. 감사하게, 노년이 마냥 허망하거나 괴롭지 않고 활기찰 수 있다는 점도 배웠다. 태어나 늙는 숙명, 무수한 갈등 속에서 서글프게 발버둥 치더라도 끼니를 챙기고 산책을 하며 자신과 화해하는 균형이야말로 인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정책이 놓으면 안 될 최후의 가치는 건강이라 여겼다. 그러나 공부하는 나와 현실을 살아가는 나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자라났다. 건강이란 이름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지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무례한 일이다. 절주 정책을 살피면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일이 사라져 매일 술을 마시는 게 낙이라는 친구에게 어떠한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담배를 피워온 아빠의 고집을 꺾으려 노력한 것도 오랜 일이다. 청소년에게 흡연 예방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작성한 날 오후에는 담배 광고가 찬란한 편의점과 어두운 길목에서 흡연하는 젊은이들을 마주했다. 각자의 행위는 고유한 역사와 판단을 기초로 한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이들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수 없다. 도대체 사람들은 언제 행동을 바꿀까? 정책이나 윤리 강령, 법은 아닐 것 같다. 감화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의 간곡한 부탁, 자신에게 닥친 생명의 위기 정도가 아닐까. 또한 개인의 행동 밑바닥에는 사회의 전 영역이 관여한다. 일상의 구조가 건강이라는 결과를 다층적으로 감싸고 있다. 이를 바꾸려면 보건뿐 아니라 주거, 교육, 노동 등 아득할 정도로 큰 전환을 떠올려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라는 질문조차 거대하다. 건강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 잔소리, 또는 사치가 아닌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설령 직선적인 정책이라 할지라도 여럿의 이야기와 관점이 연구로 모일 때 현실과 닮아 둥글어지길 희망했다. 그래서 나는 잘 아는 대상인 나에게 계속 안녕한지 되물었다. 치료를 받거나, 질환을 앓지 않더라도 안녕하다는 대답에 쉽게 긍정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건강한 모습의 에너지가 엇비슷하다면 건강하지 못한 모습은 그 나름대로 제각각이다. 내가 건강하지 못한 원인으로 스마트폰을 지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학기 동안 스마트폰 과의존(중독)이라는 주제를 고민했다. 중장년 이상의 낮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 역기능을 염려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온라인 세상에 깊숙이 잠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구를 넘어 환경으로 자리 잡은 스마트폰 시대에 상시 접속은 분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누구보다 내가 당사자다. 자세나 시력 등 신체 증상을 비롯해 정서 문제, 수면이나 신체활동, 식습관과도 연계될 수 있는 이슈다. 개인적으로 불안이나 불면을 이유로 스마트폰 과의존 상담을 받아볼 수 있었다. 상담은 유익한 자양분이 되긴 했으나, 분에 넘치게 큰 시대의 물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 역량은 좁기만 하다. 사안을 좁혀가고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파악하는 일이 대학원에서 해야 할 주요한 과제인 듯하다.

건강하게 버텨보자는 안부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묻는 연도에 보건학도가 됐다. 줄곧 건강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서 끄집어내고자 시도한 셈인데, 사실 나는 내 욕심을 채우고자 공부해 왔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다. 일상과 맞닿은 개념을 정책적 언어와 시각으로 풀어낼 역량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내 이야기와 정책이 채 듣지 못한 이야기,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더 고민해보고 싶다.

 

노희경(보건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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