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주 교수(정치외교학부)
손인주 교수(정치외교학부)

퀴즈 하나를 내본다. “다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관료들과 줄기차게 충돌했다. 미국 동부 엘리트들을 조롱했고 다른 국가를 모욕하며 관세 협박을 가했다. 국경 방어를 강조하며 비(非)시민권 거주자를 부당하게 차별했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해 맹폭을 가했다. 

정답은 도널드 트럼프? 글쎄. 정답은 바로 앤드류 잭슨! 미국의 7대 대통령이다. 잭슨 대통령은 미국의 남·서부 개척자들을 지지했던 반면, 프랑스인들을 모욕했다. 위선적인 워싱턴 상류 사회를 경멸했으며, 대중의 참정권 확대를 주창했다. 인디언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고, 국경선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잭슨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트럼프는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다. 물론 트럼프의 괴팍한 성격과 언행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미국 주류 언론이나 자유주의(liberal) 성향의 지식인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기괴한 이단아가 아니다. ‘리버럴’ 전통은 ‘미국적인 것’의 일부였지 전부는 아니었다. 시대마다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내러티브가 만들어져 왔다. 여러 관점에서 트럼프의 정책과 그의 지지자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트럼프 지지 시위대가 미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자, 트럼프의 계정을 폐쇄했다. 트럼프가 쓴 게시물이 폭력 시위를 유도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대 기술 기업이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 기본권을 제한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소셜미디어 ‘팔러’로 대거 이동하자, 이번엔 구글과 애플이 자사의 앱스토어에서 팔러를 내려받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4년 전 대선 때 보다 더 많은 7,400만여 표를 얻은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조치였다. 미국은 인터넷 여론을 검열하는 방식을 자신의 라이벌인 중국으로부터 한 수 배운 걸까? 차단과 통제가 분열과 대립의 격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일까? 

표현의 자유와 가짜 뉴스 사이에는 애매한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 판단 여부를 일부 미디어와 기술기업들이 독점할 권리와 능력은 없다. 명백한 거짓과 영원한 진실 사이에는 불편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 분별하기 힘들 때가 많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공간과 기회가 줄어들면 폭력적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근거 없는 주장은 공론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될 수 있다. 이것이 다양성과 개방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방안이 아닐까?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리버럴 엘리트들은 불편한 얘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하다. 금융권, 빅테크 기업, 미디어뿐만 아니라, 미국 동·서부 명문대학을 장악한 리버럴 지식인들은 반(反) 트럼프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각박함과 불안감이 넘친다. 양극화, 역병, 그리고 이어진 경제 위기 속에서 이들은 ‘미국적이라는 것’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을 이용해 일부 정치인들은 구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분노와 불안이 팽배한 양극화 시대는 한국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구원자에 빠지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타인에게 수단으로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정보와 뉴스의 소스를 다원화해라. 말이야 쉽지, 그렇게 할 시간과 에너지는 늘 부족하다. 대안으로 ‘반반’ 주문이 있다. ‘짬짜면’을 먹듯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두 개의 매체를 함께 맛보는 것이다. 이조차 할 여유가 없으면 ‘모험적 편식’이 있다. 미국의 보수적 워싱턴타임스 선호자는 진보적 뉴욕타임스만, 한국의 좌파 H신문 선호자는 우파 C신문만 구독하는 ‘생각의 도전’을 시도할 수 있다. 만일 관념의 타성을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할 의욕조차 없다면? 그렇다면 영양식을 먹고 숙면을 취하자! 내 몸에 기운이 없으면 세상의 다양성을 포용할 여력도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손인주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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