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살리는’ 박소영 작가가 동물과 함께 하는 삶

유해물질로 인해 안구가 손상된 상태로 강남 골목에서 발견된 고양이들과 인천 불법 사육시설에서 아킬레스건이 다친 채로 방치된 개들. 최근 몇 주간 보도된 안타까운 동물 학대 및 유기 사건들은 국내에서 동물이 지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한계 역시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자 삶의 주체인 비인간 동물에게 ‘동물권’을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12월 동물권 에세이 『살리는 일』을 출간한 박소영 작가로부터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조한 그간의 경험과, 그들의 권리가 인간에 의해 침해되는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제공: 박소영 작가
사진 제공: 박소영 작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세상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도 고양이와 새, 곤충은 그 자리에 남는다는 것을. 머무르고 지키는 것은 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몫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인간이 땅의 주인임을 자처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 『살리는 일』 중 

박소영 작가는 저서에서 길고양이들의 위생 관리와 식습관 관리를 돕는 ‘캣맘’으로 활동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기록한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를 만들고 몸이 불편한 고양이를 직접 구조하기도 한 그는 “고양이의 주된 먹이인 쥐나 개구리가 살아가기 어려운 도심에서 길고양이들이 스스로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먹이를 찾다가 차도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사비를 들여 길고양이를 돕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편견에 부딪혀 길고양이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마저도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는 절망감에 무너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박 작가는 길고양이 외에도 유기견 또는 식용견 농장에서 도축될 위기에 처한 개들을 구조했다. 주유소에 묶인 세 마리의 개를 우연히 발견해 돌보던 중 보호자가 개를 모두 식용견 농장에 팔았음을 알게 돼 동물보호단체 회원 한 명과 함께 개들을 다시 데려오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는 “개들의 보호자가 개들을 묶어 기른 후 식용견 농장에 파는 과정에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라며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개를 ‘사육되고 거래될 수 있는 소유물’이라고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동물이 대상화돼 온전한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원인으로 박 작가는 ‘인간중심주의’를 꼽았다. 그는 “인간은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한 사고를 바탕으로 비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라며 “생각의 범위를 인간 너머의 존재로 넓히는 ‘탈인간’적 면모가 중요함에도, 어떤 식으로든 비인간을 서열화해 낙인을 찍고 지배하려는 인류의 태도가 여전히 팽배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덧붙여 박 작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인간 동물이 권리 행사의 주체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물 학대가 사회 전체의 공공복리를 해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 모이지 않아 관련 법제화도 기약 없이 늦춰지곤 한다. 박 작가 역시 책에서 웅담 제조에 이용되는 쓸개 채취를 목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곰의 사례와 함께 동물과 관련된 입법 및 행정 처리가 미흡함을 지적한다. 동물보호단체는 정부가 곰들을 매입하고 보호 구역을 조성할 것을 요청했지만, 환경부는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펼치며 학대받는 곰들에 대한 구조를 회피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과 관련해 박 작가는 “동물 보호와 관련된 입법은 다른 의제에 밀리거나 선거에서 득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에게 외면을 받아 제도권 안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식용견 농장이 다수 위치한 지역구의 국회의원들은 육견협회의 여론과 연동되는 득표수를 고려해 개를 식용으로 취급하지 말자는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예시를 들었다. 이 외에도 그는 “공장식 축산, 동물 실험과 전시, 동물권 교육의 문제 등 동물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선도적인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물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움직임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다른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관련된 법제화 역시 연기된다”라며 비인간 동물을 비롯한 여러 존재가 입법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비인간 동물을 바라보며 만들어진 폭력적 관념에는 동물 종류에 따라 발생하는 ‘서열화’도 포함된다. 박 작가는 동물에 대한 이런 현상이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분류하고 서열화하며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타자화를 반복하는 심리 작용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박 작가는 최근 “박쥐나 천산갑과 같이 인간에 의해 가장 낮은 서열을 부여받은 동물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더욱 거센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동물은 자신의 터전에서 기존에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며, 그 터전과 방식을 붕괴해 혼란을 유발한 주체는 인간”이라고 역설하며 비인간 동물과의 ‘공존’이 실천되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짚었다. 

동물권과 채식, 그리고 문화

2016년부터 ‘토라’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살아가며 그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 박소영 작가는, 문득 다른 비인간 동물 중에서도 인간의 육식에 이용되는 동물들 역시 그의 고양이처럼 다양한 감정과 고통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영화 〈옥자〉를 본 후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이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채식을 결심했다. 그의 저서에서 채식은 동물권의 보장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재료의 소비를 줄여 환경오염 방지에 이바지하는 방법으로도 소개된다. 

하지만 박 작가는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 탓에 오히려 소수자로 인식되는 상황을 지적한다. 그는 국내에서 채식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당연한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제시하려면 “채식이 자신뿐만 아니라 환경을 위한 선택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비거니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채식이 영양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라는 부정확한 정보를 대체할 올바른 영양학적 지식을 정부 차원에서 널리 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서에서도 미국영양학협회가 2011년에 발표한 자료를 인용하며 “임신부나 수유기 산모도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채식만으로도 충당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인간이 경계해야 할 일상적인 습관으로 ‘소비’를 지목한다. 그는 자본주의에 힘입어 극대화된 소비 풍조가 최소화돼야 지구의 건강이 회복된다고 역설하며, 소비의 영향력 역시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팜유와 아보카도는 재배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산림을 파괴함과 동시에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달콤한 코코넛은 나무 위에서 목줄에 묶인 채 노역하는 원숭이들에 의해 채취된다. 덧붙여 박 작가는 “비트코인은 대규모 전력을 소비해 채굴되는 과정에서 매우 큰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설치미술 작품을 창작할 때 쓰이는 무수한 양의 재료들에 엄청난 자원이 낭비된다”라며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건축 자재들로 이뤄지는 잦은 리모델링 역시 자본의 개입이 전제되는 소비”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비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작은 실천

박 작가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고기를 먹던 자신이 채식을 실천하며 다른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 진정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왔다. 그는 최근에도 “가끔은 내가 동물권과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을지를 의심한다”라며 현재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일상을 보냈던 과거를 계속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모습과는 별개로 현재와 미래를 최선을 다해 가꿔나가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인과 대화할 때 역시 ‘지금’의 그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박 작가는,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매 순간 변하는 존재”(『살리는 일』 중)임을 인정하자고 말했다. 

“세상엔 늘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그 문제로 아파하는 소외된 존재들이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행복하겠다는 것은 결국 다른 존재에게 눈감겠다는 뜻 아닐까”

- 『살리는 일』 중 

지구라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비인간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과정들이 박 작가에게 행복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길 위의 고양이들을 돌보고 식용견 농장에서 개를 구조하며 몇몇 사람들과 마찰을 빚은 시간들은 심리적으로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사실 지금도 많이 힘들다. 원래 겁이 많은지라 아직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라고 말하며 노력의 목적이 자신만의 행복에 있지 않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박 작가는 “이전에 구조한 ‘플라’라는 개가 최근 캐나다에서 가족을 만난 것처럼, 내가 조금 더 움직여 비인간 동물들의 삶이 바뀔 수 있음을 실감할 때 행복을 느낀다”라며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행동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동물, 더 나아가 지구의 모든 비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박 작가는 완벽주의를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완벽하게 환경과 동물을 보호하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루에 하나씩 살리는 일’에 도전하겠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기, 동물원 가지 않기, 캣맘에게 격려의 한 마디 건네기, 우유 대신 두유가 들어간 라떼 마시기”와 같은 일들을 조금씩 실천해 “‘지구에 최소한의 해만 끼쳤다’라는 내밀한 기쁨”을 경험하는 과정이, 거창하지는 않을지라도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도울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동물과 관련된 글을 계속해서 쓸 것이라는 박 작가는, 기자라는 본업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면서 청소년 비거니즘 교양서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의 미래에 나 자신을 던질 만큼 열정적이지는 못하지만, 그의 일부는 분명히 내 안에 있었다”(『살리는 일』 중)라고 말한 그의 글과 함께, 더 많은 사람이 비인간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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