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올해로 5·18 민주화 운동이 41주년을 맞았다.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후 지난달 28일에 개봉한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대한민국 광주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민주화 운동 흔적의 복원, 그리고 군사 독재로 받은 상처의 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룬다. 기획과 촬영을 주도한 임흥순 감독은 마주 보는 두 스크린에 각각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투쟁 중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인터뷰가 재생되도록 한 같은 이름의 설치 작품을 전시 〈고스트 가이드(GHOST GUIDE)〉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영화에서도 흑백 화면으로 등장하며, ‘빛’고을 광주와 ‘좋은 공기’라는 뜻을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민주화 과정을 기억하는 현재의 모습을 두 도시의 사람, 그리고 자연과 함께 전달한다. 

영화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의 생명을 경시한 독재의 주체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에 맞선 투쟁이 남긴 흔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중 하나는 그 흔적에 대한 ‘복원’의 관점이다.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시민군과 계엄군이 번갈아 머물던 ‘역동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며 기존 건물은 리모델링됐다. 총알구멍과 핏자국 등을 통해 시민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상징하던 건물의 원형은 소실됐다. 유가족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복원이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희생자의 어머니들이 모여 청와대를 향한 집회를 진행하고 천막 시위를 펼쳤다. 민주화 운동에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에게 그들의 머무름을 지각할 수 있는 옛 전남도청은 꼭 지켜야 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영화의 장면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군부가 건설한 비밀 수용소 ‘클럽 아틀레티코’의 유물 발굴 현장으로 전환된다. 작업을 담당하는 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수용소 안에서는 매일 탁구공 소리가 들렸고 수감자 중 일부는 풀려난 이후에도 계속 환청에 시달렸다. 하지만 발굴 중 실제 탁구공이 있었음이 확인되자 그들의 환청은 멈췄다. 전문가는 그가 발굴한 불법 수감의 흔적이 “범죄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기억을 전달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유물이자 생생한 자료가 될 수 있다”라며 혼란 속에 자행된 과거의 폭력을 현재에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민주화 운동의 상흔을 복원하는 과정 외에도 두 도시에 공통으로 나타나며 현재까지 지속되는 특징은 ‘여성들의 연대와 투쟁’이다. 광주를 비롯한 전남 지역에서는 1978년부터 독재 정권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추구했으며 소설가 홍희윤(필명 홍희담)이 주도했다고도 알려진 민주 여성단체 ‘송백회’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1980년 10월에는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사망자, 구속자, 그리고 부상자의 가족 중 여성들이 모여 ‘오월어머니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화 속 ‘재학이’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폭도’로 규정되는 현실을 지켜볼 수 없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과 함께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7년 동안 온 힘을 바쳐 투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머니들 또한 ‘5월 어머니회’를 결성해 1977년부터 매주 목요일 광장에 모여 실종된 자녀들의 행방 수색 및 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두 도시의 어머니들은 이를 위해 지금까지도 광장을 가로질러 행진하고 있다. 그들이 착용한 흰옷과 흰 손수건은 흑백 화면 곳곳의 어둠을 모두 내모는 듯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임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중 정부가 저질렀던 범죄인 ‘강제 입양’ 문제를 비춘다. ‘클럽 아틀레티코’에서는 부부가 동시에 수감 중 아내가 임신하고 있던 자녀가 태어나면 부부를 처형한 후 자녀만 다른 가정으로 강제 입양되도록 했다. 이를 겪은 영화 속의 한 노모는 5월 어머니회가 보유한 재판 기록을 통해 손녀를 찾았다. 하지만 원래 가정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손녀는 자신을 갑자기 다른 환경으로 이끈 5월 어머니회와 그의 할머니를 원망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손녀는 할머니에게 “제 정체성을 찾아줘서 고마워요”라며 진실을 받아들였다. 군사 정권이 만든 비밀 수용소는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자식 세대 간 관계를 해체하는 폭력을 가했고 이로 인한 그리움과 오해를 털어내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노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영화가 담아낸 시민들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 관련 특별법이 제정됐으며 아르헨티나에서도 3만 명에 달하는 실종자를 수색함과 동시에 군사 독재 가해자를 처벌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나타난다. 하지만 두 도시가 지나온 시련을 견디며 ‘민주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곳도 있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적힌 ‘#StandWithMyanmar #SaveMyanmar #미얀마와 함께_’라는 문구를 통해 민주 사회에 다다르는 여정이 남긴 짙은 상처를 공유하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이 미얀마의 구원에 동참하기를 요청한다. 자유와 생명을 위해 상처 입은 이들이 지켜낸 빛과 공기로, 현재 짓밟히고 있는 푸른 잎이 다시 피어나도록 하는 힘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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