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화 취재부장
채은화 취재부장

입학 후 기숙사에 살던 나는 가족들에게 우리 집은 서울대 도시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학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식사 후엔 학내 카페에 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서울대는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마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도시든 소외와 차별이 존재해서일까. 서울대에도 소외와 차별이 존재하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차별과 소외가 말이다. 

신문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학내 노동조합(노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출입처인 노조에 인사하러 가기 위해 200동 건물 아래 주차장 구석진 곳에 있는 노조 사무처를 겨우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노조를 출입하며 처음으로 학내에는 여러 노조가 있으며, 노조들 모두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조의 존재를 인식하니 학내 노동자가 겪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오고 가는 그 건물 속 청소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은 한 평 남짓이었으며, 학내 식당 뒤편에서는 온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겨우 몸을 가눌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 휴게실로 마련돼 있었다.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혀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학내 복지의 뒤편이었다. 

한편 얼마 전 과방을 가기 위해 탄 엘리베이터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예방 목적으로 버튼 위에 붙여진 항균 필름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멀쩡한 항균 필름을 왜 찢는 거냐고 시민의식을 운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시각장애인은 버튼 위에 붙여진 항균 필름 때문에 점자를 확인하기 어려워 필름을 깊게 눌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종종 필름이 찢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찢어진 항균 필름이 모두가 그런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도 않은 체 시민의식을 운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 학교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학내 수많은 계단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19로 인해 건물 출입이 제한된 지금 건물 사이를 건너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큰 과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매일 걷던 길, 매일 가는 식당, 매일 가는 건물 모두 불편함 투성이었다.

세상에는 한 번 의식하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많다.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은 꼬리를 물고 다른 것들을 보이게 한다. 노동자 처우 문제를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다른 노동자 문제들이 보였고, 학내 배리어프리 문제를 인식하니 또 다른 미흡한 시설들이 눈에 밟혔다. 어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생각보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쉽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두가 동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만 살펴본다면, 생각 외로 쉽게 문제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이 모여 변화로 이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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