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부 구효주 기자
사회문화부 구효주 기자

한국에서 이성애자로 살아가기는 너무 쉽다.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도, 이상형을 말하기도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너무 쉽다는 것은 어쩌면 그 반대는 엄청 어렵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몇 해 전에 “성소수자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접했고 내 일상에 성소수자가 있으리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조금 달라지기로 했다. 내가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끔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당연하게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는 대신 조금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단어 선택이지만 ‘애인’ 혹은 ‘사귀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예상치 못하게 돌아온 질문은 “왜 사귀는 사람이라고 해? 너 혹시 ‘그런 거’야?”였다. 권리와 인간에 대한 존중은 당사자만 챙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가 나를 성소수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비약을 가미해 “그럼 내가 동물권을 챙기면 동물이 되는 거야?”라며 아니라는 답변과 함께 대화는 일단락됐다. 뼛속까지 이성애자인 나였기에 아주 쉽게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만약 내가 성소수자였다면 나의 사소한 언행이 아웃팅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잠을 못 이뤘을지도 모른다.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성소수자의 삶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다. 

‘이야기’를 만드는 문단은 더더욱 아우팅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는 사적 대화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용했고 이로 인해 한 사람이 원치 않게 동성애자로 아웃팅 됐다. 최근 김세희 작가도 한 사람의 외형적 특징과 에피소드를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를 아웃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두 사건과 논란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예 누군가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소재로 창작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100%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창작하라는 뜻도 아니다. 김세희 작가에 의해 아웃팅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는 “저에게는 당신이 관찰하고 포착하고 평가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삶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재하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이야기의 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무단으로 한 사람을 묘사함으로써 아웃팅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성적 지향은 하나의 ‘흥행 요소’가 돼 무시당하고는 한다. 동성애적 요소를 통해 퀴어 친화적인 소비자를 끌어들인 다음, 동성애적 요소를 손쉽게 이성애로 바꿔버리거나, 장난으로 넘겨버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무리를 지어버리는 것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다가도 한순간 그 어떤 맥락도 없이 “두 사람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은 여러모로 찝찝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최민영 기자는 SNS에 “인간의 어두운 밑바닥을 파고 들어간 뒤 ‘그다음의 의미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작품은 포르노라고 생각한다”라고 글을 남겼고, 나는 우리가 성소수자를 대하는 방식도 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을 쉽게 이야기하고, 소설 속 한 단락으로 만들어 버리고, 작품의 흥행 요소로 이용해 불쾌감을 줬을 때, 우리는 스스로 “그다음의 의미는 무엇이냐”라고 물어야만 한다. 이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곁의 사람들을 부정하고 힘들게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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