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공개 코미디의 발자취로 살펴보는 한국 코미디의 현재와 미래

온 국민이 KBS 〈개그콘서트〉의 엔딩 음악과 함께 주말을 마무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코미디의 중심이었던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모두 사라지며 코미디계에는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부는 중이다. 『대학신문』은 지상파 공개 코미디 방송이 사라지는 과정과 이후 코미디계의 변화를 추적하고, 앞으로 한국 코미디가 어떻게 나아갈지 살펴봤다. 

 

공개 코미디는 왜 사라졌을까?

1990년대 대학로 무대에서 생겨난 공개 코미디는 KBS 〈개그콘서트〉를 통해 방송가에 등장했다. 방청객에게 짧은 코너들로 구성된 무대를 공개하고 반응이 좋은 코너를 방송하는 〈개그콘서트〉 식 공개 코미디는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뒤이어 SBS 〈웃찾사〉, MBC 〈개그야〉 등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전성기의 공개 코미디 방송은 새로운 스타의 산실이자 온 국민이 쓰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는 ‘국민 방송’이었다. 코미디언들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지상파 공개 코미디 방송은 한국 코미디계 전반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공개 코미디 방송은 시청률이 하락하고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지며 하나둘씩 폐지됐다. 지상파 공개 코미디 방송이 자취를 감춘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촉박한 제작 일정 속에서 새로우면서도 코너로 만들어질 만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야 하는 공개 코미디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개그콘서트〉의 ‘놈놈놈’ ‘렛잇비’ 등의 코너에서 활약한 코미디언 송필근 씨는 “매일 아이디어를 짜고 수정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라며 “정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몇 주 동안 이어질 코너가 될 가능성이 없으면 버려졌다”라고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코미디언들에게 가해진 여러 제약은 공개 코미디를 더욱 정체시켰다. 2000년대 이후 시청자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외모, 성별 비하 등을 활용한 개그가 논란이 됐다. 〈웃찾사〉를 제작한 SBS 안철호 PD는 “논란이 생기면 프로그램이 큰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제작진이 코미디 소재에 제재를 가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이것이 코미디언들에게는 제약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불가피한 제약 속에서 공개 코미디 방송은 결국 검증된 공식을 반복하며 매너리즘에 빠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에는 재미있던 것들이 시청자들의 생각이 바뀌며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 웃음의 코드가 바뀌는 것”이라며 “매주 방영되는 방송에서는 새로운 웃음의 코드를 발견하기 쉽지 않아 결국 코미디언들이 늘 해온 패턴을 반복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공개 코미디 방송의 몰락은 대다수 국민이 공유하던 문화적 코드의 상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온 국민이 TV 앞에 모여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는 시대는 저물었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지금은 원하는 것을 보고 싶을 때 어디에서든 보는 시대”라고 진단하며 “이제 지상파 방송이라는 이유만으로 콘텐츠를 보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웃음’을 지향하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어느 시청자층도 확실히 사로잡지 못했고, 결국 다변화되는 대중의 취향에 발맞추지 못한 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코미디언들은 지금 어디에?

일터를 잃은 방송국 공채 코미디언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코미디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공채 출신 코미디언들이 운영하는 채널이 큰 인기를 누린다. 주위에 있을 법한 산악회 아저씨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는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나 카메라 앱의 필터를 씌운 얼굴로 2인조 아이돌 그룹을 표방하는 ‘빵송국’의 ‘매드몬스터’ 등은 방송계와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는 스타가 됐다. 유튜브 코미디 콘텐츠들의 인기 요인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는 “코미디언들이 만드는 캐릭터들이 일종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시청자들도 진짜인 것처럼 참여하는 일종의 놀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두 채널의 기획에 참여하는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는 “계속 우리 곁에 있던 코미디언들이 시대에 맞는 포맷을 만나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작금의 상황을 “코미디언들이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직접 구현할 수 있는 더 자유로운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소극장 무대에서도 코미디언들을 찾을 수 있다. 공개 코미디의 시작점이기도 한 소극장에서 코미디언들은 다양한 형식의 코미디를 제약 없이 선보이고 있다. 인천 부평의 코미디 전용 소극장 ‘필근아소극장’의 운영자기도 한 송필근 씨는 관객이 웃는 횟수를 세 100번을 웃기면 종을 치며 끝내는 형식의 ‘100쇼’ 공연을 진행한다. 그는 “어르신 관객들까지도 웃으며 나가신다”라며 “이후 관객분들이 다른 코미디 소극장을 찾는 모습을 보면 무대 위 공개 코미디만이 줄 수 있는 세대를 초월한 웃음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미디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코미디 소극장의 인지도도 하락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악재가 겹쳐 현재 소극장 코미디 공연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송필근 씨는 “많은 사람이 공연장의 존재조차 몰라 그 재미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토로했다. 

한편 유일하게 계속되고 있는 공개 코미디 방송인 tvN의 〈코미디빅리그〉에서 공개 코미디를 이어가는 코미디언들도 있다. 〈코미디빅리그〉는 케이블의 특성상 소재나 표현에서 어느 정도 자유도가 보장되고, 구성도 대본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2020년에 〈코미디빅리그〉에서 데뷔한 코미디언 김지현 씨는 “첫 코너에서부터 애드리브를 많이 했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계속 구성을 수정한다”라며 “이런 리얼함 때문에 더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매주 방청객 투표로 코너별 순위를 매기는 강력한 경쟁 시스템도 〈코미디빅리그〉만의 장점이다. 성상민 평론가는 “〈코미디빅리그〉의 팀별 경쟁 시스템이 긴장감을 줘 코미디언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든다”라고 평했다.

〈코미디빅리그〉의 생존 이면에는 여전히 공개 코미디가 아니면 신인이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 지상파의 코미디언 공채가 사라지며 지망생 자체도 많이 줄어든 지금, 코미디언이라는 칭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은 〈코미디빅리그〉의 비공개 채용뿐이다. 김지현 씨는 코미디언으로서의 데뷔에 대해 “기회가 거의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최근의 코미디언 지망생과 신인은 주로 소극장에서 일하며 돌잔치 MC, 라이브커머스 방송 진행 등으로 수입을 보충한다”라며 “그들이 꿈꾸는 방향은 〈코미디빅리그〉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유튜브나 소극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공채 출신 코미디언인 상황에서, 공개 코미디 방송 외에 신인들이 코미디언으로서 인지도를 얻고 활약할 기회는 거의 없다.

 

송필근 씨가 코로나19로 텅 빈 소극장에서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송필근 씨가 코로나19로 텅 빈 소극장에서 공연을 연습하고 있다.

 

공개 코미디, 그리고 한국 코미디의 미래

코미디언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 공개 코미디는 부활할 수 있을까? 제한된 시공간에서 연출된 상황으로 웃음을 주는 공개 코미디가 자극적이고 생생한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장 속에서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청자의 영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영상 자체의 생생함이 중요해지며, 설정된 개그를 하는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라며 “다양성 차원에서 〈코미디빅리그〉 같은 공개 코미디가 존속할 수 있을지언정 다시 대세가 되기는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공개 코미디가 여전히 유력한 코미디의 장르로 남을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정영준 대표는 “관객의 규모만 다를 뿐 공개 코미디는 여러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개 코미디는 매번 다른 관객과 소통하며 만들어지는 장르기에 각 공연이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필근 씨 역시 “커튼이 떨어지는 돌발 상황도 무대 위에서는 하나의 소재가 된다”라며 “관객과의 호흡과 소통을 통한 날것의 맛은 무대 위 공개 코미디만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공개 코미디의 존속에 관한 논쟁을 넘어 그동안 공개 코미디 중심이었던 한국 코미디계 전반에 관한 성찰도 필요하다. 공개 코미디를 통해서만 새로운 코미디언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코미디 장르를 발전시킬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스탠드업(stand-up) 코미디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웃음을 주는 넌버벌(non-verbal) 코미디 등 코미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코미디언들은 그동안 공개 코미디의 족쇄에 갇혀 있었다”라며 “TV 방송에만 주목하기보다 코미디언들이 유튜브처럼 글로벌한 플랫폼을 이용해 각자만의 새로운 주특기를 개발해 소재를 넓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코미디의 형식적 변화를 꾀한 대표적인 예는 한국에서 생소하던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지난해 KBS에서 〈스탠드 업〉이라는 방송을 제작해 유명인들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등 한국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오직 코미디언과 마이크만을 필요로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 개인의 능력에 따라 대규모의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진행한 코미디언 정재형 씨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강점은 오직 한 사람의 관점을 온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관점으로만 표현되는 코미디 장르는 흔치 않기에 코미디언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의 코미디가 성행하며 한국 코미디계 전반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미디 산업의 성장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기획사에서 코미디언들을 발굴해 브랜드 가치가 있는 개인으로 성장시켜 대중문화 장르로서 코미디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영준 대표는 “방송국의 역할은 재능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지 키우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 활동하는 코미디언들이 더 인기를 얻도록 도와 코미디 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그 재능을 펼칠 토양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 제작자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사라져도 코미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정재형 씨는 “코미디 산업의 자유 경쟁이 시작됐다”라며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새로운 플랫폼과 아티스트의 등장으로 코미디의 신시대가 열리는 중”이라고 평했다. 새 시대에 코미디가 계속 사랑받기 위해서는 코미디언들의 끝없는 고민과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공개 코미디를 비롯한 여러 코미디 장르가 자유롭게 성장하며 대중에게 신선한 웃음을 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사진: 김가연 사진부장 ti_min_e@snu.ac.kr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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