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연구원 아시아연구소
김용호 연구원 아시아연구소

40여 년 만에 관악캠퍼스에 돌아와 아시아연구소에서『아시아 브리프』 편집위원장으로 일해보니 느끼는 바가 많다. 필자는 1975년 2월 25일, 서울대가 동숭동 캠퍼스에서 개최한 마지막 졸업식을 마치고 ‘서울대 종합화 계획’에 따라 수백 대 트럭의 이삿짐과 함께 관악에서 대학원 정치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문리대(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가 해체돼 사회대, 인문대, 자연대로 나눠진 것이었다. 문리대를 이렇게 분리한 경우가 전세계적으로 드물었고, 또 분리하는 학문적 근거도 빈약했기 때문에 문리대 해체에 대한 반대가 심했지만 그대로 추진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 심지어 문리대를 해체하면 학장 자리가 2개 더 늘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 그 후 전국의 모든 대학이 서울대와 같이 문리대를 해체하고 사회대, 인문대, 자연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에는 문리대가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학은 천편일률적이어서 학문적 다양성이 지극히 부족하다. 앞으로 서울대만이라도 문리대 복원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하면 좋겠다.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문리대 해체는 좋은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대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로스쿨이 도입된 직후 일본 정치학자, 법학자들과 함께한 학제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일본 정치학자가 한국에서 어떻게 사회대가 만들어졌는지 질문했다. 일본은 정치학과가 법학부에 소속돼 있어 법학과가 으뜸이고 2류 신세인 정치학과는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내가 한국에서 사회대가 만들어진 역사적 과정을 설명했더니 일본 정치학자가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사례가 일본 정치학과가 법학부에서 독립하는 명분을 찾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제에 따라 학문의 발전과 자율성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월 사회대가 주최한 ‘한국 사회의 위기와 사회과학’ 세미나에서 오늘날 대학이나 학과가 너무 분절화돼 있어 한국 사회의 위기 진단과 처방이 단편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서울대는 1975년 종합화과정에서 문리대를 해체한 후 거의 반세기 동안 과거보다 더욱 분절화된 학제를 거의 변동 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가정대에서 생활과학대, 농대에서 농업생명과학대 등 일부 명칭이 변경되거나 간호대학과 자유전공학부 등의 신설이 전부였다. 학제 개편이 비교적 쉬운 대학원에서는 정부 방침에 의거해 국제대학원, 치의과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이 등장했고, 최근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등이 신설됐으나 학부 학제는 거의 변동이 없다. 최근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문명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서울대가 하루빨리 대학과 학과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요인 중의 하나는 4년 단임제 총장제도이다. 학제 개편 계획 수립과 실행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4년 임기의 총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학제 개편을 위해서는 총장 임기가 적어도 8년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4년 동안 업적이 많은 총장은 연임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총장이 학제 개편을 비롯해 대학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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