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교수(건설환경공학부)
남경필 교수(건설환경공학부)

최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환경과 환경에 대한 우리 인식이 그만큼 중요시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환경오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가 병이 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겠지만, 병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있기보다는 각자의 가치관, 몸 상태, 개인적 선호 등에 따라 다양하고도 적절한 대처법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자주 듣는 오염 물질에는 유류(油類), 중금속류, 다이옥신류, 환경 호르몬류라고 불리는 ‘내분비장애물질’ 등이 있다. 이 중 다이옥신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래 자연계에 존재하던 물질이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이다. 환경오염은 우리가 피해야 할 파괴 현상이지만, 그 원인 물질들은 우리가 없앨 수 없는 필요 불가결한 물질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나갈 것인가? 정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면 근사치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환경오염에 대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사실은 명확한 ‘팩트’다. 첫 번째로,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은 화학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부주의한 취급과 관리라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이니 ‘사용하지 말자’가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자’가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근사치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환경오염 중 특히 토양오염은 발견이 어렵고, 한번 오염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쉽지 않으며 그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그 예로, 충남 서천군에 있는 구 장항제련소 주변의 비소 오염 토양을 정화하기 위해 수천억 원이 소요됐다. 웬만한 크기의 오염 부지 조사와 정화에는 수백억 이상의 비용이 쉽게 들어간다. 

오염된 환경을 어디까지 정화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합리적일까? 1990년대 중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오염된 토양 또는 부지를 정화하는 데 있어 “How clean is clean?”이란 개념이 활발히 논의된 적이 있다. 토양은 흙 자체를 말하지만, 부지는 그 토양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이 사용되는 용도를 의미한다. 적어도 위해성(risk)의 관점에서는 산업 단지나 상업 용지로 사용되는 부지의 토양을 주거지, 농경지, 어린이 운동장 같은 토양과 같은 수준으로 깨끗이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모든 부지의 토양이 ‘아주 깨끗한 상태’(pristine level)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우리가 가진 여러 조건에 제약이 있으므로 오히려 그런 노력과 비용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환경오염을 치유하는 목적이 ‘오염 물질을 없애는 것’ 그 자체인 듯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보이는데, 치유의 진짜 이유는 오염 물질로부터 인간이나 생태가 받는 위해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위험(hazard)은 물질 그 자체의 독성을 의미하고 위해(risk)는 그 위험한 물질이 사람, 생태 등의 실제 수용체에서 발현되는 위험의 정도로 설명된다. 같은 위험성을 가진 물질이라도 그 위해성은 부지의 용도나 주변 수용체 상황 등의 주어진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서로 다른 정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에 적합한 대처를 할 수 있느냐’이지 모든 오염 상황을 동일한 잣대로 처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감성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어야 할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근사치를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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