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옛활자 시대부터 디지털 활자 시대까지 한글활자의 흔적을 따라가다

지난 6월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 지구 유적에서 을해자(乙亥字)를 비롯해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약 1,600여 점이 발굴됐다. 이전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조선 전기 활자 실물은 을해자 병용 한글 금속활자 30여 점뿐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재정 학예연구관은 “세종 때 주조된 활자의 실체를 알기 어려웠던 만큼 이번에 출토된 활자들은 조선 전기 활자의 형태와 조판 방법 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가치를 지닌 활자들은 디지털 활자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과거의 유물로만 치부되고 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 금속활자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조명하고, 활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인쇄술과 인쇄문화의 흐름에서 한글활자의 명맥이 오늘날까지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봤다.

▲인사동에서 출토된 한글 금속활자 중자(中字) (사진 제공: 문화재청)
▲인사동에서 출토된 한글 금속활자 중자(中字) (사진 제공: 문화재청)

 

한글 금속활자와 인쇄문화의 발전

한글 금속활자는 한글 창제 이후 처음 등장했다. 금속활자 인쇄는 목판 인쇄에 비해 다양한 책을 빠른 속도로 찍을 수 있고 목판을 보관해야 하는 비용과 수고를 줄여줬다. 이런 장점에 기반해 조선시대에는 왕실을 중심으로 통치 목적하에 금속활자 주조와 인쇄문화가 발전했다. 이재정 연구관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는 훈민정음 창제 후 1447년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활자”라며 “갑인자병용 한글활자라고 불리는 이 활자를 기점으로 을해(乙亥), 을유(乙酉), 무신자(戊申字)병용 한글활자 등이 왕실에서 주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보다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국립한글박물관 문영은 학예사는 “금속활자는 국가와 왕실의 보물이자 전유물에 가까운 존재였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며 수많은 서적과 활자 상당수가 소실됐고, 금속활자 제작에 필요한 구리와 같은 금속이 부족해지면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인쇄 기술이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지는 못했기에, 1880년대에 들어온 서양식 납활자로 대체되면서 재래 금속활자의 시대는 점차 막을 내렸다.

서구에서 신식 활판술과 전태법(電胎法)*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주조활자는 납으로 만들어진 새활자로 교체되고 서적의 규격이나 짜임새도 근대화됐다. 이 시기 출판문화를 이끈 주역으로 조선에 온 서양 선교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기, 그들은 인쇄와 출판을 통해 선교하고자 했다. 그들은 성경을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신식 기술과 서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된 활자가 필요했다. 초기에는 서양식 활판인쇄술이 이미 보급된 청나라와 일본에서 주로 인쇄가 이뤄졌지만,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선교의 자유가 허용됨에 따라 성서 제작에 활용됐던 한글활자들과 신식 인쇄술이 국내에도 도입됐다. 국내에 도입된 활자는 종교활동 기관 외의 일반 인쇄기관에도 폭넓게 이용되면서 1890년대에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한글활자를 주조해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와 기술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르러 민족문화말살정책이 시행되면서 한글활자가 거의 소멸되고, 인쇄와 출판이 발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인쇄문화는 총체적 위기를 맞이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한글 금속활자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새로운 활자 시대가 도래했다. 자모(字母) 조각기와 사진 식자기(植字機)의 도입으로 더 이상 활자를 직접 새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원도활자* 시대는 그 안에서도 여러 발전을 거쳤다. 이전까지는 제작할 활자의 크기와 같은 크기로 글씨를 그려 활자를 직접 새겼지만, 원도활자는 이와 달리 씨글자를 직접 새기지 않고 제작할 활자의 크기보다 크게 원도를 그린 후 자모조각이나 식자판 등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렇게 원도의 모양대로 활자가 만들어짐에 따라 원도를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면서 글꼴 디자이너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또한 「한글 활자체 변천의 사적 연구」(김진평, 1990)에 의하면 1970년대 들어서 옵셋(offset) 인쇄*가 보급되고 발달함에 따라 사진 식자기와 사진 식자체가 성행했으며, 이후 전산사식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활자의 원도를 전산 입력해 제작하는 전산 활자가 등장했다. 컴퓨터가 도입되면서부터는 원도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직접 컴퓨터의 화면상에서 활자체가 설계되는 디지털 활자 시대로 넘어가게 됐다.

『활자흔적』(이용제, 박지훈 공저, 2015)에 의하면 1980년대부터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인쇄 환경은 컴퓨터 중심 체계로 변화했다. 종이에 그렸던 원도는 벡터 이미지로 대체되고 납활자 주조에 사용하던 씨글자와 원자판도 사라졌다. 활자의 물질적 실체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는 원도활자 시대를 지나며 이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글자가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디지털 활자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활자라는 낱말의 쓰임은 축소됐다. 기존에 사용하던 한글 서체의 개념이 자연스레 디지털 폰트의 개념으로 전환된 것이다. 박지훈 그래픽 디자이너는 “전통 활자가 오늘날의 문자 매체와 직접 연결되지는 못한 상태”라며 “말만 같은 ‘한글활자’일 뿐 예전과 지금의 문자 사용 방식과 자형(字形)은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설명했다. 이재정 연구관은 “전통 금속활자 제작 기술에 따라 금속활자를 재현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지만, 기록이 부족하고 기술이 단절돼 공백과 한계가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활자정신의 현대적 계승

디지털 활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물 활자보다 화면 속 데이터로 존재하는 디지털 활자에 더 익숙해져 있다. 활자보다 글꼴이 중요해지면서 ‘주식회사 산돌’ ‘직지소프트’ 등 여러 글꼴 전문 회사들이 탄생했고,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매체에서 한글을 읽게 됨에 따라 매체의 종류에 맞는 한글꼴이 개발되는 등 글자를 찍어내는 방식과 과정은 다양해졌다. 금속활자 자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명맥은 이어져 왔다. 박지훈 디자이너는 “최근 의식 있는 서지학 연구자들이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오늘날 문자 사용 문화에 반영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와 협업을 주선하거나, 반대로 디자이너들이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 양식에 전통 문자 양식을 반영하고자 전통 활자에 관심을 보이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전통적인 활자 주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한글 활자의 현대적 계승은 디자인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이용제 디자이너는 최지혁체, 박경서체, 이원모체 등의 영향을 받은 ‘바람.체’를 개발했으며, ‘최정호 프로젝트’를 진행해 다른 활자 디자이너들과 함께 최정호체를 재해석한 서체들을 내놓기도 했다. 서체뿐만 아니라 그가 선택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한 글꼴 제작에서도 활자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각종 무료 폰트들에 비해 사용자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폰트 안에는 각 사용자들이 그 폰트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는 활자 디자이너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들을 표현한 결과물인 활자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기업이 앞장서 활자 정신을 계승하기도 한다. 네이버에서 2008년부터 진행해 온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이 바로 그 예다. 특히 최근에 진행된 ‘마루 프로젝트’는 활자의 정신을 오늘날의 방식으로 표현한 바람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루 프로젝트는 궁체와 최정호의 명조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한글 원형의 계보를 잇고자 2018년 시작됐다. 보기 좋기만 한 글꼴이 아닌 ‘올바른’ 글꼴을 만들자는 뜻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민부리(고딕체)*로 편중된 시각환경에 한글꼴의 원형과 정신을 담은 부리(명조체)* 화면용 글꼴인 ‘마루 부리’를 개발해 화면용 글꼴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자 했다. 또한 글꼴 개발과 배포 과정 전반에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게 해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방식을 도입해 만들어진 ‘마루 부리’는, 글꼴에는 정답이 없고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마루 프로젝트’의 글꼴 제작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마루 부리 글꼴 (사진 제공: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마루 부리 글꼴 (사진 제공: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오늘날 전통적인 주조활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개의 활자는 글씨가 새겨진 쇳덩어리에 불과하지만, 활자들을 조립해 인쇄된 서적에는 체계적인 정보가 담기게 된다. 이처럼 활자 인쇄술의 본질, 즉 지식과 정보의 공유와 확산이라는 취지는 현대 정보사회의 운영원리로써 관통하고 있다. 활자 인쇄술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에,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이 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에 기반해 한글 관련 산업의 앞길을 설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태법(電胎法): 활자 표면에 전기 분해로 구리를 입힌 다음 종자로부터 벗겨 구리깍지를 만들고 납으로 뒷면을 보강하는 방법.

*원도활자: 원도(原圖)는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린 글자꼴의 씨그림으로, 이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활자를 원도활자라 한다. 원도활자에는 1950년대에 만들어진 납활자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사진활자가 있다.

*옵셋(offset)인쇄: 보통 판면에서 직접 종이에 인쇄되는 데 비해, 옵셋 인쇄는 판면에서 일단 잉크 화상을 고무블랭킷에 전사해서 종이에 인쇄한다. 

*민부리와 부리: 글자의 형태를 기준으로 줄기 끝에 부리(글자 줄기의 시작 부분과 맺음 부분이 꺾어지거나 돌출된 형태)의 존재 여부로 구분한다.

 

인포그래픽: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레이아웃: 이다경 기자 lid041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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