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전환기 동아시아 평화 정세와 미군기지 정책토론회

한반도 평화 정세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실패 이후 정체되며 남북 관계는 위기-완화-위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대내외 정치·군사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주한미군기지와 기지 주변 주민의 삶에 관한 문제를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지난 7일(목), 녹색연합을 중심으로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한국기지평화네트워크 외 4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미군기지 재편과 변화된 한미동맹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과 주한미군 개편에 관한 두 개의 발제에 이어 미군기지가 위치한 평택, 동두천, 춘천, 제주, 군산, 용산 등의 지역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미중 패권 경쟁과 주한미군 재편이라는 거대한 정치·군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여전히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안보 전략의 최우선에 두겠다고 연설한 ‘캔버라 선언’ 이후 미국이 해외 전력의 60%를 아시아로 집중하면서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거시적인 구조 변화 속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개편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2000년대 초반 추진된 미국의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2018년 그에 따른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및 미2사단 이전으로 주한미군기지는 현재까지도 이전·확장·재배치 과정에 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한국기지평화네트워크 고유경 운영위원은 △절반도 반환되지 못한 미군기지 △환경 정화 문제와 기지 이전 비용 △추가 무기 배치에 대한 주민 안전영향평가 및 대책 마련 부재 등 주한미군 재배치 과정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짚었다.

주한미군 재편으로 인해 미군이 들어온 자리에도, 떠난 자리에도 주민들의 삶에는 큰 상흔이 남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용산, 의정부, 동두천 일대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하며 주한미군 평택 시대가 열렸다. 평택평화센터 임윤경 소장은 “평택 전체 인구의 약 9%는 미 군무원, 미군가족을 포함한 주한미군”이라며 “평택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으로 인한 영향을 받게 돼있다”라고 말했다. 미군의 한국 민간인 체포 시도 사건, 미군 장벽 공사로 인한 장동리 침수피해 등 미군 관련 여러 사건 사고가 잦았음에도 평택에는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 주민 구제 제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임 소장은 “지자체 차원에서 주한미군 관련 갈등을 전담할 인력 및 조직을 정비하고, 피해 주민을 위한 직접적인 법제도 개선,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미군기지 반환이 이뤄지고 있는 동두천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최희신 사무국장은 “미군 주둔 70년 역사로 인해 미군 의존적 산업구조가 고착화됐고, 미군이 이전하자 지역 경제가 휘청였다”라며 “그나마 반환받은 땅도 산악지대나 변두리 지역이라 산업연관 효과가 미미하다”라고 호소했다. 기지 이전을 통해 미군 기지촌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도시로 재탄생되리라는 기대와 달리, 시내 상공의 무인정찰기 비행훈련 등 일부 남은 기지의 문제들과 반환된 기지의 환경오염은 동두천 주민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도 동두천 주민들은 회복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위한 공동체를 조성하고 미군 기지의 온전한 반환과 환경 정화를 촉구하며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가 남긴 환경 문제=한편 미군기지가 이전한 자리에는 심각한 환경오염이 남아 주민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군이 점령했던 춘천의 캠프 페이지는 신라 말~고려 초의 도로와 건물이 있었고 화폐, 기와 등의 관련 유물이 나올 만큼 문화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미군과 국방부는 기지 이전 이후 환경 정화를 진행했지만, 유물 발굴 과정에서 추가 오염이 발견되며 미군과 국방부의 부실 정화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캠프페이지 부실정화배상요구 범시민대책위원회 오동철 집행위원장은 “시민단체들의 오랜 노력을 통해 민간검증단을 구성하고, 추가 조사·오염정화 비용을 국방부가 부담하도록 했다”라며 “비현실적인 오염조사 기준을 개선하고, 원인자 부담 원칙에 의해 미군이 정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90% 이상의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용산에서도 14건 이상의 환경오염 사고가 확인되는 등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녹색연합 군환경팀 신수연 팀장은 “기지 내부에서 어떤 오염이 이뤄지는지, 어떤 물질이 사용되는지 주민들은 알 방법이 없다가 기름유출사고가 나면 비로소 문제를 알게 된다”라며 광범위한 사고 범위에도 불구하고 미군 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신수연 팀장은 “미군이 떠난 지역의 발암 위해도가 100명 중 2명 꼴로, 환경부가 허용하는 기준의 무려 2천 배에 달한다”라고 밝혔다. 부지의 위해성과 관련 질환은 주민 건강권 침해 문제와 직결되기에 이후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신 팀장은 “환경과 건강에 위해가 되는 물질의 사용·관리·보관은 주거공간과 거리를 둬야 하며,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관련 제도 개선과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와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관련 지역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군사주의에 저항하고 주민의 피해를 알리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토론회를 통해 참여자들은 미군기지의 온전한 반환, SOFA 조항들의 개정을 통한 환경오염·주민 피해 문제 개선, 기지 공간 활용에 대한 공감대 형성 및 정책 마련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전쟁과 그 흔적이 남긴 위협, 환경오염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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