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멕시코 주립대학 컴퓨터 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미국 정부의 비밀스런 연구작업들이 이루어지고 UFO가 자주 관찰되는 뉴멕시코주는 작은 초목들만 자라는 광활한 모래사막과 인적이 별로 없는, 그야말로 자연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도시의 첨단 문명과는 이질적인 그 곳에서 사람이 자연환경에 따라 그 삶의 폭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서울대는 지금 ‘발전중’이다. 여기서 발전이란 외형적인 발전이다. 각 단과대학과 연구소들이 교육, 연구 그리고 후생복지라는 이름 아래 경쟁적으로 비슷비슷한 기능의 건물들을 바위 언덕이나 산 중턱에까지 아슬아슬하게 짓고 있다. 지금 대학에 들어오는 신입생 수는 우리가 다닐 때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건물은 몇 배로 늘어났다. 새로운 연구 분야가 늘어가고 그만큼 연구 공간도 더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건물의 수가 학교의 발전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아도 학교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서는 건물들이다.

이런 건물짓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이곳에서 자라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 감골이라 불리던 규장각이 확장공사로 그 많던 감나무를 솎아내었다. 교육지원을 하는 CTL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삼각형으로 기개있게 자라,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던 그 큰 나무를 제자리가 아닌 어딘가로 보내버렸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황량했던 캠퍼스가 우람해진 나무들로 제자리를 잡아 가나 싶더니 알게 모르게 늘어가는 최신식 건물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제 학생들의 기초교육과 인성교육이 중시되고 있다. 이런 교육을 위해서도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은 나무를 베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손쉽고 가치있는 기초교육의 한 측면을 잃어버리고 있다. 바야흐로 꽃들이 만발하고 나뭇잎도 무성해진다. 이런 나무는 우리에게 단지 시각적 편안함과 신선한 공기만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른 봄부터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죽은 듯이 있다가 다른 나무들이 다 푸르러졌을 때야 겨우 잎을 내기 시작하면서, 서로 가지가 걸리지 않게 뻗으며 늦가을까지 열매를 달고 있는 감나무도 있다. 이런 환경을 통해 자연의 순리와 질서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능력이 어느 사회, 어느 환경에서도 서로 더불어 살고 적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주로 컴퓨터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이런 자연적 감성이다.

수십년을 같이하여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나무들이 베어지고, 건물이 늘어날 때마다 개인적인 공간은 늘어났지만,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더 좁아지고 여유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접하는 자연환경의 크기만큼 사고의 폭을 넓히게 된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사이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가 이전에 누렸듯이, 나무 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우리 후배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한다. 새 건물에 형식적으로 심어진 가녀린 나무들이 우리의 발전이 되게 하지 말고 깊이 뿌리박고 크게 성장한 나무들이 우리 학교의 역사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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