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 수의대 교수[]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인간은 혼자서만은 살 수 없는 존재
다른생명체와의 공존 모색하는 분야에도 관심 기울여야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의 기초 위에 생명과학은 지난 200년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최근의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진보는 눈부신 것이어서, 수천년간 인류를 괴롭혀 왔던 주요 전염병들은 대부분 의학적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고, 그 외 많은 유전병이나 난치병들도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아마도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의학과 생명공학은 우리 인류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와 축복만을 가져다 주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인류의 수명연장은 현 시대의 인류에게는 참으로 커다란 축복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다른 종들에게는 재앙이 되었고, 미래의 인류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확실하다. 의학의 발달로 인한 인류의 수명연장은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200년간 늘어난 인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른 종들이 살아갈 터전을 빼앗아야만 했다. 어쩌면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번영은 지구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무수한 생명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멸종 속도로 간다면 21세기의 반이 가기 전에 지구상 모든 종의 절반 이상이 멸종되리라는 예측도 있다.

문제는 다른 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과연 인류의 생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인가이다. 대답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인간 역시 이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 의존하며 지탱해 가는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벽돌집이 벽돌 한두 개 빠진다고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벽돌 빼어내기를 계속해 나가면 결국은 무너져 내리는 날이 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생태계의 구성원 빼내기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라는 종 혼자서 이 지구 위에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생명체도 우리와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생명과학의 다른 분야들 역시, 인류의 복지를 추구하는 의학이나 생명공학과 똑같이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다른 종과의 관계를 다루는 생명과학 분야에는, 도대체 우리 인간 외에 어떤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찾는 분야(분류학), 어떤 과정에 의하여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연구하는 분야(진화학), 생명체들이 어떻게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는지를 탐구하는 분야(생태학), 인류와 다른 종들이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하는 분야(보전생물학)가 포함된다.

앞으로 장기적인 인류의 생존은 이런 분야들의 연구결과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지극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분류학, 진화학, 생태학, 보전생물학과 같은 생명과학들은 의학이나 생명공학과 같이 단시간에 인류의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의 사각지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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