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바느질로 침선의 맥을 이어간다

무형문화재라 하면 대체로 판소리, 탈춤, 농악, 타령 등 공연이 가능한 유형을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무형문화재에는 예능기술뿐 아니라 소반, 갓, 활, 악기 등의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도 포함된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중요무형문화재 109개(2005년 4월 30일 기준) 중 44개가 공예와 관련된 기술이다. 끊어져가는 전통 공예 기술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네 차례에 걸쳐 만나본다.

“통하였느냐”라는 대사로 200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스캔들」은 파격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상류층 ‘패션리더’들의 화려한 의상으로도 화제가 됐다. 정확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스캔들」의 의상들은 침선 공예 전수자 구혜자씨(65)가 제작한 것.

‘침선’은 바느질로 의복과 장신구 등을 만드는 것으로 ‘침선장(匠)’은 침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능숙한 솜씨로 아이들의 옷을 꿰매는 어머니, 일반 한복점에서 한복을 만드는 사람과 침선장이 하는 바느질은 무엇이 다를까. 물론 바느질의 솜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더해 침선장은 일반 가정이나 한복점에서는 잘 만들지 않거나 제작하기 어려운 궁중 의복, 전통 예복을 만든다. 즉 침선장은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통해 급 의복 문화의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궁중에서뿐 아니라 예전에는 여자라면 누구나 침선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개화기 이후 복식이 서구화됨에 따라 침선 기술의 명맥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고 궁중 의복을 제작하는 일도 없어져 침선 공예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1988년 침선장 정정완 선생(94)을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했다.

정 선생의 첫째 며느리인 구혜자씨는 정 선생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침선을 시작했다. 정 선생 수하에서 18년간 침선 기술을 배워 전수조교 자리에 있는 구씨는 고령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정 선생을 대신해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의 침선공방을 지키고 있다.

침선 기술에서는 기본적인 바느질 기법만 해도 무려 10여 가지에 달한다. 가장 기초적인 홈질이나 시침질, 박음질은 널리 알려진 기법이지만 솔기를 장식하거나 탄탄한 바느질을 위해 하는 상침뜨기, 옷감의 올이 풀리지 않도록 바느질하는 휘갑치기 등은 이름조차 낯설다. 바느질하는 손놀림만 존재할 것 같은 전통 침선 공방에 있는 재봉틀. 다소 의외의 물건이라 그 쓰임을 물었더니 “간단한 직선 박음질의 경우 제작 시간을 단축하고 단단한 바느질을 위해 재봉틀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부드러운 곡선을 살리고 옷에 고름과 같은 장식을 달기 위해서는 꼭 손바느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25 전쟁 이후 한복은 양복의 보편화에 따라 생활복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잃게 됐다. 게다가 서양만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던 당시 풍토로 한복은 설 자리를 더욱 잃어갔다. 구씨는 “당시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최근에는 그나마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복이 격식을 갖추고 예의를 차리는 자리에서나 입는 예복으로 변질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구씨는 “물론 각종 의례 때 입는 비단 재질의 화려한 한복도 있지만 서민들에게 있어 한복은 평상시의 작업복”이라며 “조선 풍속화에서도 볼 수 있듯 한복은 활동하기 편하고 쉽게 빨 수 있는 등 일상생활에 적합한 옷이다”라고 말했다.

‘개량한복’에 대한 생각을 묻자 구씨는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개량한복은 “한복의 느낌만을 낼 뿐 한복의 기본 틀을 벗어나 양복의 제작과정을 거치는, 한복도 양복도 아닌 옷”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 생활복으로서의 한복이 아니라면 차라리 양복을 입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서울대 의류학과에 개설됐던 전통의복 관련 수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다른 곳에서 다 없어져도 마지막까지 남겨야 할 곳이 국립 서울대가 아니겠느냐”는 구혜자씨. 가늘게 떨리는 그의 말투에서 끊어져 가는 전통의 명맥을 잇고자 힘겹게 노력하는 장인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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