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이라크 전쟁으로 전 세계의 반전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평소엔 관심도 없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어쩐지 보고 싶어졌다. 공개적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신랄한 편지를 쓴 숀 펜이나, 반역자란 소릴 들으며 협박에 시달린다는 반전 옹호자 수잔 서랜든과 팀 로빈스 부부도 보고 싶고, 또 헐리우드의 영화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수상한 마이클 무어란 거구의 사내가 수많은 청중들의 야유 속에서도 "부시씨, 부끄러운 줄 아시오"를 연발하는 장면이 나왔다. 야유 속에 열을 내며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통쾌하면서도 민망했는데, 아랑곳 않는 그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미국 사람들은 마이클 무어를 어떻게 대접하나 물어보았다. 무어는 책이면 책, 영화면 영화 모두 인기가 있으며, 『볼링 포 콜럼바인』은 학교에서 상영해주고 또 많은 학생들이 열광한단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고백컨대 그렇게나 사실여부가 의심스럽고, 그렇게나 웃기면서, 동시에 끔찍한 진실감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는 처음 보았다.

소박한 상식에서 비롯된 분노와 유머


내친 김에 『멍청한 백인들』을 구했다. 책을 읽으면서 자지러지고 뒹구르며 또 감동 받았다. 여전히 주장들의 사실성여부는 의심스러우나, 이 책에서의 무어는 철저하게 상식적이고, 건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짐짓 귀여운 척, 모르는 척 딴청을 부리다가 어느 순간 분노와 비판정신으로 날을 세우고 부시 행정부의 국내외 정책 및 환경문제, 미국의 언론, 대중문화, 민주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을 매몰차고 통렬하게 공격한다. 시종일관 태도를 바꿔가며 보여주는 통쾌하고 효과적인, 때로는 짓궂은 정도가 야비하게까지 느껴지는 유머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말 감동적인 부분은 다른데 있다. 바로 그의 모든 분노와 비판과 유머가 소박한 상식에의 옹호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새삼 옹호하기 무색한 상식들을 주장하고 또 주장할 수밖에 없는 그의 통렬함에 페이소스까지 느껴진다.


가령, 무어는 이런 식이다. 언젠가 한겨울 2월 달에 시카고의 기온이 갑자기 영상 22도에 육박한 날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며 해변에 나가 일광욕을 즐겼단다. 한 아줌마가 "아, 이런 날씨 정말 좋아요"라고 무어에게 말했고 그는 "좋으시다? 그럼 만약 오늘밤 한 밤중에 갑자기 해가 뜬다면 아, 좋아, 햇빛을 더 볼수 있어 하실건가요?"라고 되묻는다. 이어서 무어는 연중 가장 추워야 하는 달은 추워야 마땅하고, 따뜻해야 하는 날은 따로 있는 것인데, 뭔가가 심히 잘못됐으며, 이는 지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지구는 알아서 돌아가겠지 하며 돈과 생존에만 집착하고 살 것인가 하고 열을 펄펄 낸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교토기후협약'에서 내뺐을 때 무어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 책이 말하는 멍청한 백인들, 즉 '나쁜 자들(bad guys)'은 특정한 일단의 사람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파괴하는 모든 사람에 게 해당된다. 그는 말한다. 뭔가 더 나은 길이 있어야만 한다고.


무어를 만나보시라. 유머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시원히 한번 웃을 좋은 기회일 것이다.

박여선
인문대 박사과정·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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