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인문대 교수ㆍ종교학과)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는 아직도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돼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연금술은 구리ㆍ납ㆍ주석ㆍ철 따위의 비금속을 금ㆍ은 등 귀금속으로 변화시켜 불로장생약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책에서는 연금술이 단지 철이나 납을 금으로 바꾸는 신비로운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연금술이라 했다.

꿈에 나타난 낯선 소년이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이집트의 보물을 찾게 될 것이라고 계시한다. 양치기 주인공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재산이었던 양떼를 팔고, 짝사랑하는 여인이었던 가게주인의 딸마저 뒤로 한 채 여행을 떠난다. 보물이 숨겨진 장소는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목숨을 건 이집트까지의 여행을 통해서 삶의 일상에 숨어있는 표식을 섬세하게 인식하고 매일 목적지를 향해 간다. 숨어있는 표식은 신이 인간에게 흘려놓은 언어인 것이다. 연금술사는 이렇게 자기 스스로 일상 속에서 신의 표식을 발견해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신을 꺼내는 자아의 연금술이다.

‘나는 누구인갗라는 질문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 중요해서 진부하기조차 하다. 이 질문에 대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신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길가메쉬 서사시』다. 길가메쉬는 기원전 27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우룩(현재 이락남부 와르카)에서 실존했던 왕이다. 길가메쉬는 2/3가 신이고 1/3은 인간이었다. 이 영웅의 최고의 가치는 명성이며 영웅적인 전투에서 전사한다면 죽음은 그에게 진정한 적이 아니다. 그의 명성은 후대에 불멸하기 때문이다. 길가메쉬는 잇달아 승리를 거둔다. 반인반수인 엔키두와의 싸움을 통해 그는 ‘다른 자아’인 엔키두를 친구로 얻는다. 그들은 저 유명한 백향목 숲의 괴물 후와와를 정복하고 우룩의 여신 이쉬타르에게 모욕을 줄 정도로 그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이 정점에서 그들의 인생은 바뀐다. 무자비하게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용맹을 떨친 그들은 그들이 인간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인간들의 몫은 죽음이며, 그 몫은 신들이 결정한 사항이다. 그들은 신들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러한 행동은 신들을 화나게 하여 엔키두가 죽게 된다. 자기의 일부인 엔키두를 잃은 길가메쉬는 처음으로 적나라한 현실로서 죽음을 파악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이겨낼 수 없는 공포로 인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영생을 추구하게된다. 진정한 불멸은 세상의 권력, 명예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가메쉬는 명성을 통한 불멸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육신의 불멸을 찾는다. 명성을 추구하던 이전의 길가메쉬는 그 옛날 홍수에서 살아남았다. 지하세계 어디에선가 살고 있다는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길가메쉬가 모든 온갖 수고를 겪은 후 우트나피쉬팀을 만났을 때, 길가메쉬는 실망한다. 그가 우트나피쉬팀으로부터 들은 홍수 이야기는, 더 이상 그가 영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우트나피쉬팀이 제시한 잠과의 싸움에서 졸았던 그는 영생을 포기한다.

겉보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상황에 반전이 있다. 동정심을 느낀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길가메쉬에게 페르시안만에 깊숙이 숨겨진 불로초의 장소를 알려준다. 길가메쉬는 물 속으로 들어가 이 풀을 따온다. 드디어 그는 영생을 자신의 손에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반전이 일어난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끄는 연못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기 위해 부주의하게 이 풀을 둑에 남겨둔다. 이 때 마침 뱀이 이 풀을 보고 낚아채 가 버린다.     

그를 패배시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유약함과 경솔함이다.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 자체에 도전하기 때문이다.그가 비난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이 허탈한 웃음을 통하여, 길가메쉬는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제 그가 추구하는,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는 불멸이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성실하게 즐기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삶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영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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