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끼리 통하는’ 퀴어 夜話

“서울에서 만나 사귄지 두 달을 조금 넘겼을 때 그가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두 달간의 짧은 만남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사람을 좇아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지요. 우리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IMF시기, 대학을 갓 졸업한 그들은 가진 돈도 없었고 직업도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센베이 과자’를 팔면서 어렵게 살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그들은 안타깝지만 1년 4개월에 걸친 동거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멜로 드라마 소재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 불갗 또는 ‘19세 이상 관람갗 판정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성애자 얀센씨(가명겞꼈?의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퀴어 애즈 포크」, 「퀴어 아이」 등 동성애자를 소재로 한 외국 드라마가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특별하고 힘든 일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이 지난 5월 31일(화) 홍대 인근의 레즈비언 바에 모여 ‘그들끼리 통하는’ 주제로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수다회-퀴어 夜話」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지난 5월 27일부터 시작된 ‘제6회 퀴어문화축제-퀴어절정’의 일환이다.

20여 명의 ‘퀴어’(성적소수자)들이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모인 이날 수다회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지지 않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준비없이 무작정 시작된 얀센씨의 동거 이야기는 레즈비언 엠마씨(가명)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엠마씨는 “유학시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겨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트너 역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고백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간 동거하고 있다고 한다. 

얀센과 엠마는 동거를 준비하고 있는 퀴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을 상담해 주기 위해 이번 행사에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거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경험들을 ‘선배’로서 ‘후배’ 동성애자들에게 조언해주기도 했다. 엠마씨는 “우리는 초반 3년 간 성격 차이로 엄청나게 싸웠다”며 “한국이었으면 당장 짐을 싸들고 나갔겠지만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 사이에 다시 화해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이성애 커플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로의 성격차를 메워가면서 사는 것이 사랑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남의 사랑 이야기를 엿듣는데 2시간 30여 분의 시간은 너무 짧았던 것일까. ‘동성애’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의 수다는 ‘2차’로 이어져 계속됐다.

「퀴어야화」는 9일(목) 퀴어의 노후 생활, 10일 다양한 퀴어 문화 대비 등 주제를 바꿔가며 계속된다. 이 밖에 전시회, 댄스파티, 영화제 등 ‘제6회 퀴어문화축제-퀴어절정’의 다양한 행사들이 10일(금)까지 종로 및 홍대 인근에서 벌어진다.

<문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0505-336-2003) www.kqc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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