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넋을 기리는 영혼 결혼식

류민희씨(사회과학계열[]05)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으로 ‘민중의례’라는 것을 경험했다. 마치 ‘국민의례’ 시간처럼 선배들은 일제히 일어나 엄숙하게 묵념을 한 뒤, 애국가 대신 어떤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비장하고 구슬픈 느낌의 이 노래는 바로 제2의 애국가로 여겨지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두 남녀의 영혼 결혼을 기리는 노래다. 신랑은 1980년 5[]18 광주항쟁에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 회의실에서 전사한 윤상원 열사, 신부는 1979년 12월 공장 옆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박기순 열사다. 두 열사는 1978년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의 ‘강학(講學)’-당시 들불야학 교사를 일컬음-출신으로, ‘들불7열사’에 속한다.

“죽음을 직시한 그 빛나는 눈망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볼티모어 선」의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에서 열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윤 열사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윤 열사는 들불야학과 ‘민중문화연구소’의 극단 ‘광대’의 책임자였다. 그는 광주항쟁 때 항쟁 지도부를 조직하고, 「투사회보」를 제작해 항쟁의 실상을 알렸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그는, 5월 27일 계엄군의 발포에 서른 살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민청학련’사건 관련자였던 박형선의 누이동생 박기순 열사는 전남대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1976년 입학했으나, 시국사건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 1978년에는 여대생 최초로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외쳤으며, ‘들불야학’의 창립멤버로 활동했다. ‘들불’이라는 이름은 유현종의 『들불』을 읽고 감동한 그녀가 ‘들불처럼 번져간 동학혁명의 뜻을 기리자’고 제안해 붙여진 것이다.


이들을 ‘영혼 결혼식’으로 묶은 것은 소설가 황석영씨. 황씨는 1981년 여름 광주항쟁을 전국에 알릴 목적으로 문화선동대 ‘일과 놀이’를 조직하고, 그 아래 ‘자유광주의 소리’팀을 구성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을 주제로 한 소리극 ‘넋풀이’를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하여 전국에 보급한 것이었다. ‘넋풀이’의 녹음은 광주 운암동 산중턱에 있는 황씨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보안상 녹음실을 사용할 수도 없어서, 술 먹고 친구들끼리 떠들썩하게 노는 척 하면서 녹음을 했지. 보통 일제 녹음기에 마이크를 꽂고 녹음한 게 원본 테이프야. 거기에는 우리 이웃집 개가 짖는 소리, 열차의 경적 소리까지 들어 있어.”

넋풀이의 마무리를 장식한 곡이 지금의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사는 황석영씨가, 작곡은 1980년 ‘영랑과 강진’으로 제1회 대학가요제 은상을 차지했던 김종률씨(현 소니 BMG 뮤직 대표이사)가 맡았다.

“녹음날 전에 종률이가 기타로 멜로디를 들려줄 때, 떠오른 것이 백기완 선생이 고문 후유증을 겪으면서 썼다는 시 ‘묏비나리’의 한 구절, ‘산자여 따르라!’였어.” 원제목인 ‘산자여 따르라’는 83년 실제로 치러진 ‘영혼 결혼식’의 동참자들에 의해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변경된다.

원곡의 가사는 지금 알려진 것과 조금씩 다르다. 원곡의 가사는 영혼으로 승화한 열사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목놓아 부르짖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는 ‘우리’들이 주체가 되어 외치는 노래로 개사되었다. 곡 중에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원래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였으며,‘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였다. 죽은 이들의 외침이 살아남은 자의 다짐으로 승화한 것이다.


박기순 열사는 지난 26일(금) 뒤늦은 졸업장을 받았다. 전남대가 사범대 후기 졸업식에서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졸업을 하지 못했던 열사들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화재로 훼손됐던 윤상원 열사의 생가는 올해 5월 복원돼 ‘윤상원-박기순 열사 자료전시관’과 추모탑으로 완성됐다. 또, 영화제작사 CS브라더스와 기획시대는 윤상원 열사를 중심으로 한 광주항쟁 10일간의 역사를 영화로 그려낼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의 젊은 날을 바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진혼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해지고 있다. ‘앞서서 나간’ 그들의 영혼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산 자’들이 따라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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