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워터」 김채린(미학과ㆍ석사과정)

지난달 우리는 어떤 여름 영화 하나를 만났다. ‘맥박 상승, 체온 수직 하강, 오감을 자극하는 리얼 서스펜스.’ 이 영화는 개봉한 지 이틀이 지난 8월 28일 초유의 사건을 하나 만든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환불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영화 「오픈워터」이다. 이 사건은 대구에서 일어난 일로, ‘두 사람과 상어만 나오는 것이 전부’라는 불만 때문이었다. 이것은 기술상의 문제나 심의로 난도질된 것에 대한 것이 아닌 단순한 영화 내용을 근거로 환불을 요구한 흔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보통 우리는 관람한 영화가 형편없이 엉망이었다고 하더라도 불평과 비방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영화가 수준 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영화를 보겠다고 선택한 것은 관람객의 의지이고, 그 의지에 대한 대가와 책임은 최소한의 지적능력만으로도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관람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황당한 환불 사태를 보도한 기사처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 집단적 항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일 뿐인 것인가.

그렇다면 먼저 영화는 과연 얼마만큼 형편없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지난 2005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이었다. 2004년 선댄스 영화제는 물론 시애틀 영화제, 마우이 영화제, 햄프톤 영화제 등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도 화제작 중 하나였다. 미국 개봉 당시에도 처음에는 전국 47개 극장에서 개봉하였던 것이 고작이었지만 개봉 3주가 지나서는 2709개의 극장으로 확대되어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도 왕왕 있다. 당장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하였다고 자랑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만 하여도 국내에서는 단관 개봉하였다. 사실 미국에서 1970년대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은하수…」의 베이스와 원작을 좋아하는 많은 마니아들의 존재 등을 생각해보면, 원작의 유명세도 두터운 마니아층도 부재한 우리나라에서의 개봉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토양을 고려하고도 「오픈워터」에서 벌어진 환불 사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오픈워터」는 스쿠버다이빙 중 표류된 부부의 이야기이다. 79분의 이 짧은 영화는 50여분을 계속해서 물 위에 둥둥 떠 구조를 기다리는 부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지루한 50여분의 표류를 놀라운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은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에 등장하는 상어가 보여주는 공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상어조차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공포는 내게는 보이지 않는, 물 아래의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망망함과 그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극단적 위기감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맨몸의 연약한 인간은 망망한 바다 위에 그저 먹이사슬의 일부가 되고  「오픈워터」는 이 모든 사실을 매우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독립영화가 아니라 헐리웃의 블록버스터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미국 개봉 시 사용했었던 포스터의 망망대해에 우리나라의 포스터는 집채만한 상어를 채웠다. 이 영화는 마땅히 「죠스」와 비교될 것이 아니라 「블레어 윗캣와 비교 되었어야 했다. 그 누구도 이 영화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갯에서처럼 50분 가까이 한 가지의 사건에 대해서만 묘사할 것이라고 힌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는 「내 친구…」의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놀라운 영화의 미덕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 영화를 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형편없는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소화제 광고로 무좀약을 팔아치운 것과 다르지 않고 그것은 곧 사기를 치는 것이므로 응당 환불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갱의 저자 로버트 맥기는 ‘관객들은 전혀 예열되지 않은 상태로 들어와 처음 20분 동안 그 영화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관객들이 ‘식단을 미리 알고 거기에 입맛을 맞춘 상태’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화에 있어서 마케팅의 위치와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오픈워터」는 잘못된 마케팅이 어떻게 영화를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표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흥행의 참패를 좋은 영화를 발견하지 못한 관객의 우둔함이나, 한국인의 특성 등으로 매도하는 식민사관과 같은 사고방식은 사기성 마케팅만큼이나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김채린(미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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