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비정규법안의 기본방향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되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높은 강도로 지속돼온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학자를 인터뷰했다.

윤정렬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
김유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조교수(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매우 경직돼있다는 정부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퇴직금, 정당한 해고 조건 명시여부 등 해고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OECD의 경직성 지표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파악해볼 수 있다. 이 지표에 의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중간정도의 순위를 차지하는데, OECD 국가 중 대다수가 노동시장 경직성이 강한 유럽인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상당히 경직돼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 비정규직의 유연성은 상당히 높은 반면 정규직의 유연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 정부는 그동안 명확한 지표없이 특정 사업장 몇 군데의 해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노동시장이 경직돼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경제학적 지표인 변동성, 탄력성 등을 중심으로 한 나의 연구 결과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에도 한국은 60여개국 중 아프리카 국가 등 후진국들에 이어 9번째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기업들의 수익률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가?

: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노동자에 대한 해고 위협이 커져 사기저하 등의 요인으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은 더욱 유연화돼야 기업들의 수익률이 높아질 것이다. 노동시장이 경직된 채로 유지될 경우 정부규제를 여전히 많이 받게 될 기업 측에서는 인건비 등 감수해야 할 손실이 너무 많다. 해고시 지불해야 할 높은 금액의 명예퇴직금이나, 수개월 전 해고통지를 했을 경우 노동자의 의욕저하로 인해 떨어질 작업능률 등이 그런 손실의 예다.

: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직률을 높여 기업의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 효과에 기대어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은 이미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신장섭ㆍ장하준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30년 전의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소득분배가 급격히 불평등해졌다는 말인데, 이로 인해 각종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인건비 절감은 무리다.

◆ 경기변동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불가피한가?

: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인력을 해고하고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쉬워진다면 경기변동 대응에 큰 도움이 된다. 경기변동에 대응하려면 기존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인재 고용이나 신기술 도입이 필요한데, 신기술 도입 역시 새로운 인재 고용과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인력을 해고하지 않고 재훈련시켜 새로운 업무에 적응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해고 후 신규 채용보다 기존 인력의 재훈련에 드는 비용이 더 크다. 또한 현재 재훈련을 주도하는 정부는 기업이 어떤 재훈련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비효율적이다.

: 정부는 정리해고와 같은 수치상의 유연화에만 집중해왔지만, 이런 형태가 아니라도 경기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경기변동 때 노동자의 교육과 훈련을 강화해 바뀐 환경에 재적응시키는 ‘기능적 유연화’가 그것이다. 실제 유한킴벌리는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교육ㆍ훈련에 집중해 불황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능적 유연화’는 지금처럼 정부가 수치상의 유연화에만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해고 위협으로 불안해하는 노동자가 업무에 애착을 가지고 교육ㆍ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겠는가?

◆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일자리는 더 늘어날 것인가? 

: 경직된 노동시장의 규제가 풀릴 경우 기업들의 신규 자본투자가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경기가 호전돼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반면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는 고용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규제가 강해 함부로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 없다면 기업에서는 처음부터 신규 고용을 회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새로운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보다는 기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주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또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남용과 저임금은 대다수 서민들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침체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자리 증가는 기대하기 힘들다.

◆ 정규직이 이득을 얻는 만큼 비정규직이 손해를 입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 그렇다. 비정규직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가 지나치게 보장돼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성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비용 소모가 크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지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아니다. 전체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몫 자체가 적어진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수치가 높을수록 전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노동소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크게 하락했다. 또 지난 10여년간 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은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이 아니라 근접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결국 정규직에게는 예전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면서 비정규직에게는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의 임금이 지급돼온 것인데, 마치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손실을 자신의 추가 이익으로 만든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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