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쟁 - 한국 경제 문제점 진단

장하준 교수(영국 캠브리지대ㆍ경제학과)

1663호에 실린 김영철 교수(계명대ㆍ경제학과)의 질문에 답하며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한 마디로 구별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었다.

당장 답이 떠 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결국 정리하여 한 답은 “다 같이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어리둥절해 하실 독자들을 위해 쉬운 말로 설명을 해보도록 하자.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 가도 잘 사는 사람은 있다. 어떻게 보면 부자 입장에서는 인건비 싸고 규제도 적은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가난한 나라에 가도 고급 호텔이 있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선진국 뺨 치게 좋은 곳도 많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낮다. 중심지에서 몇 발자국만 벗어나면 대부분의 지역은 빈곤과 절망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가보면 물론 후진국보다 부자가 더 많지만, 부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린다. 대도시, 부자 동네를 벗어난 지역도 대부분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나름대로 활기차게 살고 있다.

이러한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라는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국민 소득 자체도 아직 상대적으로 낮을뿐더러 여성, 이민자, 장애인, 각종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심각하다. 더욱이 외환 위기 이후에는 자본 시장 자유화와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인하여 그나마 평등한 편에 속했던 소득분배마저 악화되어 OECD 에서 멕시코,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불평등한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이런 의미에서는 도리어 후퇴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철 교수님의 비판은 지당하다.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이 기회를 빌어 지역격차의 문제에 대해 그동안 생각하던 몇가지 생각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집적의 이익 때문에 시장에는 항상 지역 집중의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치 이러한 지역집중을 무슨 ‘자연 현상’인 것처럼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장이 낳는 결과가 사회적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정부의 규제를 통해 언제든지 시정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 개입에 의한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과연 효과가 있는가에는 의문이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정부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장 증설 제한 등을 통해 수도권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러나 공공기관의 이전은 상징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지방 지역사회의 뿌리가 되어야 하는 경제활동과는 관계가 거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겉도는 정책으로 끝나기가 쉽다. 1960년대에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브라질의 중심이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인 것은 브라질리아라는 도시가 경제기반이 없는 행정도시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수도권만 규제해봤자 지방으로 경제활동이 옮겨가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이다.

우선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기울어져가는 농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농업의 다각화, 고급화를 위한 정부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 유럽의 예에서 볼 수 있지만, 미국이나 호주 같이 천혜의 자연 조건이 있는 나라가 아니면 우리나라 정도의 소득이 되는 나라에서는 다각화, 고급화 없이는 농업이 생존할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방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책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방은행이 활성화되어 지방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려야 한다. 독일, 이탈리아 등 지방경제가 활성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지방정부와 지방은행, 그리고 그 지역의 중소기업 단체가 협력하여 산업을 발전시키는 모델이 정착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정부재정이 점차 분권화되어야 한다.

이탈리아나 독일 같이 통일된 지 오래되지 않아 처음부터 수도권 집중이 약했던 나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처음부터 여러 지역이 골고루 잘 살았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책 개입을 통해 이를 시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지방경제를 진정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이 도입되지 않으면 ‘다 같이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쾌도난마 한국경제』가 소홀히 했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 주신 김영철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