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9월 9일. 둘째주 금요일인 이 날은 바로 홍대 앞 클럽 ‘사운드데이(Soundday)’가 있는 날이었다.

열여덟번째를 맞은 지난 사운드데이는 ‘바보, 전태일과 함께 노래합니다!’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으로 열렸다. 이번에는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함께 ‘전태일 거리’ 조성 기금을 모금하는 등 전태일의 의미를 기리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홍대 앞 놀이터에서는 전태일 관련 영상회 및 음악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운드데이가 이처럼 특정 사안과 연계해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클럽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사운드데이는 ‘무경계 음악축제’를 표방한다. 이번에도 각각 독특한 특성을 지닌 8개의 라이브 클럽들이 참여했다. 그 중 성격이 다른 세 개의 클럽을 선택해 기자가 직접 사운드데이를 체험해 봤다.

# 7시 56분 @ 사운드홀릭

우선 홍대입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클럽 ‘사운드홀릭(Soundholic)’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만오천원을 낸 기자는 맥주나 음료수 한병과 교환할 수 있는 음료권 한 장을 받고, 참여클럽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입장권을 팔에 찼다.

입구에 들어서자 고막을 찢을 듯 울려대는 힙합 음악 소리에 비로 축 처졌던 기분이 설레기 시작한다.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이 무너질 듯한 천장과 테이블 없이 작은 바가 중앙에 위치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댄스클럽과 비슷하지만 무대가 있어 스탠딩 콘서트장 분위기다. 15명 남짓했던 ‘클러버(Clubber)’들이 40여명으로 늘어났을 때쯤 무대를 가렸던 스크린이 올라갔다.

남녀 2인조 어쿠스틱 밴드 ‘Scarface’의 첫 공연에 이어 헐렁한 옷차림에 모자를 비뚤게 쓴 ‘Superkidd’가 요란하게 등장했다. 공연인지 아닌지 예사롭지 않은 ‘사운드 체킹’만으로 관객을 한바탕 웃긴(?) 보컬이 하는 말.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흥분하시면… 너무 좋잖아요!”

이들의 공연은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노래 중간에 어딘가에서 꺼낸 확성기를 통해 욕을 퍼붓고 익살스런 표정도 짓는다. 자신들도 펑키인지 힙합인지 장르를 알 수 없다는 그들의 음악은 클럽 안 모든 사람들의 혼을 쏙 빼 놓는다. ‘Superkidd’의 보컬 허첵씨는 “젊은데 무슨 눈치냐”며 “적어도 ‘이 순간’만은 즐기자”고 말했다.

#10시 18분 @ 에반스

방방 뛰던 분위기를 바꿔서, 재즈클럽 ‘에반스(Evans)’로 향했다. 마련된 테이블은 물론 설 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Soundholic’에서와는 달리 양복을 입은 직장인 클러버들도 많이 보인다. 이미 진행 중인 재즈 밴드 ‘Groovy Room’의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에반스’의 벽은 울퉁불퉁한 나무로 돼 있었다. 클럽 매니저 레오씨에 의하면 “재즈가 일렉트릭(electric)보다 어쿠스틱(acoustic) 사운드로 더 많이 연주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로 된 벽은 음이 반사돼 찌그러지는 반면 나무 재질을 불규칙하게 돌출 시키면 소리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피아노, 통기타, 플루트 등의 은은한 악기들의 반주 위로 보컬이 속삭인다. “자, 제가 하는 대로 따라해 보시죠. 으음~ 예에~” 관객 대부분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보컬의 재시도. 그에 이은 세 번째 시도. 어느 새 관객들의 반응도 커져간다. 불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무대와 객석은 그렇게 함께 하고 있었다.

# 11시 11분 @ 프리버드    

마지막으로 찾아간 클럽 ‘프리버드(Freebird)’는 다소 거친 기운을 풍긴다. 의자는 제멋대로 놓여 있고 벽은 지저분하다. 그러나 이는 한 쪽 벽면에 빼곡한 LP판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리버드에서는 무거운 사운드의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럽문화협회는 한 달에 한 번 오디션으로 실력 있는 인디밴드를 선발해 사운드데이에 참여시키고 있는데, 공연에 한창이던 록밴드 ‘MAN’은 이번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밴드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샤우팅’ 창법, 그리고 심장이 터질듯 한 강렬한 사운드. 그들은 우리가 흔히 ‘록밴드’하면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묵묵한 헤드뱅잉으로 일관하던 관객들만큼이나 연주자들도 참 말이 없다. 보통 연주하는 곡 중간에 소개 등 짤막한 멘트가 있게 마련인데 말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그러다가 스스로 어색했는지 한 마디 한다. “오늘 분위기가 황폐하네요. 인생이 그리 밝지만은 않죠.”

이날 행사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진행됐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장르의 경계, 무대와 관객의 경계, 나이의 경계까지도 허문 그곳. 눈치 보지 않고 그 순간을 즐겼던 서로의 뜨거운 입김이 곧 그리워질 것 같다.

<사운드데이 홈페이지 www.sound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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