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발전방향

김종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198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할 즈음 세계 박물관계는 이미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컴퓨터 기술이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하였다. 그 후 90년대 후반, 급성장한 멀티미디어 정보기술(IT)을 이용해 각 나라의 주요 박물관들은 거의 모든 소장품 관련 자료의 전자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불과 20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이룩한 성과였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가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성큼 선두로 나섰다는 것이다. 네비게이션 기능이 내장된 개인용휴대단말기(PDA)를 이용해 박물관을 관람하고 집에 돌아가 PDA에 표시해 놓았던 전시물을 다시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 전세계적으로 흔치않은 우리의 박물관 IT 융합시스템이다.

박물관 발전을 위한 요소로서 정책과 재원 및 기술을 빼놓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이미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책과 재원에 대한 과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선 재원의 확보나 운영이 많은 부분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정책이야 말로 박물관 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축이라 볼 수 있다. 정책은 누가 만드는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들은, 또는 그들로 구성된 박물관 및 관련 기관은 무엇을 기저로 하여 박물관 정책을 제시하는가? 그 기저는 바로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다. 국민 모두의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충만하고 거기에 노력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 박물관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는 관심의 대상인 박물관이 얼마나 있는가? 다음의 문답을 풀어보자.
서울 삼성동에 살고 있는 김박물씨는 금요일 이른 아침, 근처에 있는 선정릉에서 산책을 한 뒤 직장인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출근을 하였다. 11시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진행된 회의에 참석하고, 이어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다음주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국회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구하였다. 토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원과 식물원에 갔다가 저녁에는 국립국악원에서 공연을 볼 예정이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갈 계획이다. 위에서 김박물씨가 갔거나 가야 할 박물관은 몇 개인가?

1946년 설립된 비정부 국제기구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박물관 ‘정의’(ICOM 정관 제2조)를 따른다면 답은 열개다. 선정릉,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문화관광부,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국회도서관, 동물원, 식물원, 국립국악원, 북한산국립공원 등 모두가 박물관이다. 생소한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기관과 장소를 박물관으로 보는 것은 이미 세계 박물관계의 약속이 됐다. ‘유물과 예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건축물로서의 박물관’이라는 개념은 일찍이 지난 세기에 사라졌으며,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무척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모두가 우리의 박물관 발전을 위한 관심의 대상이다.

이와 같이 세계의 현대적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실로 역사적으로 유구한 박물관이 실재하는 나라이다. 해인사 장경판고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史庫) 등 수백년 역사를 지닌 현존하는 박물관만도 적지 않다.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박물관들은 바로 우리 주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아담한 생태공원도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의 관심이 바탕이 돼 우리나라 박물관들의 정책이 만들어질 때 박물관의 올바른 발전이 시작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