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한성백제를 들여다보다
2천 년 전 한성백제를 들여다보다
  • 황문경 기자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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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출토 토기의 다량 발굴로 백제왕성 관련 논의를 심화… 한성백제 사회상 본격 연구

▲풍납토성 발굴 현장 및 출토된 토기 ©

한성백제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풍납토성 발굴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이후 본격화하면서 토기를 비롯한 유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양의 토기를 비교․분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성백제의 사회상과 더불어 풍납토성의 축성 시기에 대한 기존 논의를 심화하는 학술대회도 잇따라 열려 주목된다. 한성백제는 고구려에서 온 온조가 위례성에 백제를 세운 기원전 18년부터 고구려 장수왕에 패해 웅진(현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까지 근 500년의 시기를 말한다.

 

지난 26일(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신대 학술원 주최로 ‘한성기 백제의 물류시스템과 대외교섭’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기조 발표를 한 이남규 교수(한신대․국사학과)는 「한성백제기물류시스템과 대외교섭 연구의 제문제」에서 “물류시스템은 사회와 사회구성원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며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각종 물품의 원료 산지를 파악하고 물자 제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은 물류시스템의 중요한 고찰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성백제시대 토기에 대한 물리화학적 분석시론적 고찰」을 발표한 조대연씨(영국 세필드대 고고학과 박사과정)는 화성 당하리, 마하리유적과 풍납토성, 미사리유적의 토기를 광물학적 분석 등을 통해 분석해 한성백제시대 토기생산과 유통과정을 조명했다. 토기는 형태나 문양뿐 아니라 제작방법, 산지, 사용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물자 교역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는 “마하리는 당하리의주변지역임에도 토기의 화학성분이 다른 점을 볼 때, 당하리 가마유적이 인근의 토기유통에 독점적인 산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권오영 교수(한신대․국사학과)는 「물자․기술․사상의 흐름을 통해 본 백제와 낙랑의 교섭」에서 “풍납토성에서 낙랑(계) 토기가 발굴되고, 최근 발굴조사가 진행된 화성 기안리유적에서 낙랑계 제도술(製陶術)과 제와술(製瓦術)이 발휘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며, “이는 단순히물자의 유입을 넘어 인간집단, 특히 공인(工人)의 이주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동안 양진과 남조에 집중되었던 백제 대외관계에 대한 연구가 낙랑군으로도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29일(월)에는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한국고대학회 2003년 추계학술회의 ‘온조와 초기백제’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는 박순발 교수(충남대․고고학과)가 「한성기 백제 도성의 문제점풍납토성 축조 시점 검토를 중심으로」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풍납토성 축성과 한성백제 전성기 시점에 대한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박 교수는 “풍납토성의 축성 시기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주장대로 2세기 무렵까지 상향 조정되는 데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며 기존 사학계의 주장을 고수한다. 풍납토성 성벽 축토층(築土層) 속에 혼입된 유물 중 가장 시기가 늦은 환호 출토 토기상은 주월리 유적과 같은 시기인데주월리 유적의 흑색마연토기가 3세기 중․후반경의 것이므로 풍납토성의 축성 시기는 그 이전으로 상향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 신희권 학예연구사는 타날문(打捺紋) 토기, 경질무문토기에 문양을 찍은 심발형(深鉢形) 토기 등 풍납토성에서 기원전․후 무렵의 토기가 출토됐다는 발굴 결과를 통해 “풍납토성이 기원전 1세기 무렵 축성을 시작해 늦어도 기원후 2세기 이전에 완성됐으며, 한성백제는 국가 성립 초기단계부터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또 그는 기존 사학계가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가 출토되는 시기는 원삼국시대라 칭해 흑색마연토기가 나오는 국가체제로서의 백제시대와 구분하는 것에 대해 “두 시기의 토기가 외형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편 신희권 학예연구사는 잇단 한성 백제 시대 학술대회에 대해 “풍납토성 출토 유물을 통해, 한성백제기의 왕성이 풍납토성인지 몽촌토성인지 여부와 그 축성시기가 언제인지에 관한 기존의 논의에서 한 발 나아가 한성백제의 사회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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