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스탕달, 『연애론』 최영미(시인)

사랑이라는 우스꽝스런(?) 정열을 스탕달의 『연애론』처럼 철저하게 파헤친, 연애의 정열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해부한 책을 일찍이 나는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연애의 유형을 분류하며 각각의 특징을 잡아내는 거의 과학에 가까운 분석, 불가사의한 인간심리를 글로 풀어내는 정확한 문체에 압도당한 나는 나의 오랜 독서 습관대로 책의 앞뒤를 들추어 저자의 생애와 나이를 확인해보았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어떤 연애를 했기에, 어떤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길래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그토록 냉철하게 다룰 수 있었을까.

프랑스 지방도시의 부유한 부르주아의 아들이며, 나폴레옹의 장교였던 그가 이탈리아 사교계에서 추방되어 파리로 돌아와 이 책을 출간했던 1822년이면 그의 나이는 마흔. 마흔살이면… (나보다 몇 살 어리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사랑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지. 독서의 침대에 누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탕달처럼 마흔이 넘어 연애를 졸업한 나는 『연애론』을 탐독했다. 지난 여름 꼬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두달 넘게 누워지내며 옛날의 정열을 반성했다. 의자에 앉지 못해 눕거나 서서 책을 읽었다. 페이지가 좌우로 넘어갈 때마다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자세를 교정하며, 상사병에 걸린 처녀처럼 그야말로 전전반측 ‘연애’를 붙들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독서로 눈이 피곤해지면, 아리송한 번역문 구절이 나오거나 스탕달의 논리에 의구심이 들면, 하루에도 서너번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나보다 연애에 정통한 여선배에게 스탕달을 인용하며 (때로 한 두쪽을 통째로 다 읽어주며)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방탕한 남자는 대개 대단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다는데, 동의해?”라고 물었다. 스탕달과는 다른 그녀의 견해를 경청하며, 장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세미나 하듯이.

이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내가 왜 진작 몰랐던가. 오년전, 십년전, 아니 그 인간을 만나 내 청춘이 망가졌던 이십년쯤 전에 『연애론』을 독파했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텐데. 계급과 성향이 다른 남녀의 연애심리를 꿰뚫고 있었다면, 쓸데없이 시간과 정열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을텐데…. 후회로 가슴을 치며 독서를 중단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 걸려 간신히 책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남자를 몰랐던 스무살 무렵에는 도입부 몇쪽을 훑다 너무 어려워 팽개쳤던 문장들을 연애의 쓴맛과 단맛을 안 지금은 맛있게 음미할 만큼 나는 늙었다. 스탕달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며, 과거에 내가 알았던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을 유형별로 상황마다 대입하며 내 인생을 정리했다. 지난 이십여년간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을 스탕달 덕분에 정리한 뒤, 나 혼자 알기에 아까운 이 책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아직 사랑의 생애를 사는 젊은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작가가 가장 좋아해 오래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연애 풍속을 비교한 글도 흥미롭다. 스탕달에 따르면,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연애결혼이 적은 나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아무도 책을 읽지 않고, 모두가 사랑을 한다. 성경처럼 명쾌하며 아름다운 아포리즘들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공하려면 사교계에 널리 얼굴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감히 간결한 문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영혼뿐이다.”

감히 말하건데, 스탕달의 『연애론』은 사랑에 관해 인간이 쓸 수 있었던 가장 뛰어난 에세이다. 이 위대한 책이 1822년에서 1833년까지 단 17명의 독자들에게만 선택되었다니. 무지한 평론가들로부터 부도덕하며 대중적인 취미에 영합하는 난해한 작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니. 나는 오직 백명의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던 그의 다소 도전적인 응대를 이해할 만하다. “내 문장의 과학적인 엄격함만이 여하한 비난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주리라”고 선언했던 스탕달처럼 나도 당당히 나를 변호하며 한국의 작가로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난데없이 떠오르는 의문을 접어두고, 저자의 두번째 서문을 약간 비틀어 나의 독서에세이를 마치련다.

“당신은 사랑 때문에 6개월 넘게 불행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연애론』을 읽으세요. 만일 당신이 다정한 영혼의 약점 때문에 불행했던 적이 없었다면,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한다’는 자연에 反한 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反感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당신은 모르지만, 스탕달은 알고 있던 어떤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에게 깨닫게 해줄 것이니까. ”

지금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나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해되지 않으리라. 오로지 사랑을 믿었던 서른이 넘은 바보(?)들에게, 배반당하더라도 순수의 여행을 계속하려는 맑은 눈동자들에게 『연애론』은 불멸의 빛을 던져 주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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