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주(국제대학원 석사과정)
김진주(국제대학원 석사과정)

실외기가 멈춘 에어컨은 8평 남짓한 기숙사 방의 열기를 잠재우며 그것의 조용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어컨의 바람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던 나의 공간은 주백색의 조명등에게 빛을 허락하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갔고, 나는 방구석 침대 위에 그저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음’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음’의 감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곤한 몸과 생각을 침대에 눕힐 수 있다는 안도감 외에는 아무것도 나의 관심을 살 수 없었다. 그나마 침대 옆 탁상 위에 몇 달간 놓여 있던 김영하의 산문집『여행의 이유』만이 일말의 흥미를 자극하는 향수 짙은 존재였다.

나의 불안증의 역사는 석사생 첫 학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여 전, 석사과정을 시작한 이래로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태롭고 무기력한 감정들에 늘 휩싸여왔다. 그 감정들이 ‘불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순간은 학내 대학생활문화원을 찾아 심리검사를 시행하고 불안도가 정상 이상으로 측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때였다. 상담사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불안의 정도가 너무 높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사 결과표 위 꺾은선 그래프가 불안이라는 지표만을 향해 오롯이 솟구쳐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에 이런저런 생각과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많았지만 심리상담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심리상담이 간절해진 때가 와버린 것이다. 

불안은 잠을 앗아갔다. 내일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오늘의 하루를 최대한 버텼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수면욕 따위는 없다는 듯 잠을 거부했다. 졸려도 졸리지 않고 싶었고, 새벽 동이 틀 때가 돼 피곤의 마지노선에 다다라서야 잠이 들면 현실을 대할 수 없어 깨고 싶지 않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니 일상생활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렇게 악순환에 중독돼갔다. 불안의 주요한 원인은 어느샌가 우하향하고 있던 자존감이었다. 가진 게 없이 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진 게 많은 동기들 사이에서 나같이 능력 없는 흙수저가 발전은 무슨, 졸업조차 하지 못할 거란 좌절감이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나를 여러 차례 무너뜨렸다. 무너진다고 무너지는 나의 자존감은 애초에 실체가 불분명했던 것이었다. 

심각한 불안에 고통 받던 시간들 속에는 세상에는 기댈 수 있는 작은 귀퉁이마저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에 사선을 넘나들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괴로움도 있었다. ‘괴롭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냥 괴로움 그 자체인 감정이었다. 그 누구도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못난 나를 이해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강렬했기에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절벽 끝엔 지금의 괴로움을 느끼지 못할 죽음만이 오로지 답이었다고 생각했다. 살아있음으로 인해 내리 느끼던 고통에 매일을 숨죽여 울던 몇 달간의 시간들을 죽지 않고 참아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떠올리니 그들이 준 사랑 앞에 나의 죽음을 드리우기엔 너무 죄송한 마음이 거대했다. 한 학기 내내 이어진 상담을 통해 불분명의 실체가 분명의 실체로 변모해갔다. 추측하건대, 나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이리라. 

그 이후로 무던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학기에 수료를 하고 졸업 이후 진로를 결정하려니 불안이 다시 찾아와버렸다. 취업과 박사과정 사이의 복잡한 질문 속에서 아직까지 나 스스로 답하지 못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야 할 나이라는 압박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다시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흘러갔다. 미래로 향하던 생각은 과거와 과거의 원초적 두려움을 마주한다. 

그러는 사이 ‘보류’는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가 돼버렸고 김영하의 산문집 같은 존재들을 통해 불안들로부터 회피하려 시도해왔다. 회피의 순간에는 불안이 내 속의 주류(主流)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회피의 순간마저도 불안은 내 속에, 그곳에 언제나 있었다. 불안은 가족과 친구의 말, 책 속의 구절,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 모두 깊은 감정에 개입돼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씁쓸했다. 마치 나와 불안은 애초에 하나였던 것 같이 말이다. 나는 어떻게 이겨 내어야 하는 것인가. 불안과 동일시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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