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강연회 | 보건학과 BK교육연구단 세미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장애인 건강과 돌봄’

지난 11일(목), 건강 재난 시기 보건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보건학과 BK교육연구단이 주최한 첫 번째 세미나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세미나에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임선정 부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박주석 간사가 발제를 맡아 장애인 건강권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 대표적 취약계층인 장애인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건강과 돌봄에 대한 질의응답 역시 이뤄졌다. 『대학신문』은 활동가들로부터 인구의 5%에 달하는 260만 장애인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들어봤다.

 

팬데믹 시기, 관심에서 밀려난 장애인들

코로나19로 장애인 건강권 부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발생 당시, 청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 103명 전원이 확진됐다. 5일 만에 7명이 사망했고, 병동은 공동 격리가 진행돼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이에 12개의 장애인 단체가 연합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요청을 했고, 그제서야 환자들은 타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을 수 있었다. 기저질환을 가진 신장 장애인들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신장기능 약화 때문에 이틀에 한 번 정기적으로 투석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병원들이 폐쇄됐다. 투석병원을 찾아다니다 유독이 쌓여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 70대 남성은 코로나19 확진 후 집에서 대기하다 이틀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신장 장애인이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아 병원에서 이들을 받아주지 않은 탓이다.

임선정 부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재난이 발생할 때는 장애인들을 위한 대책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현재까지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은 사후적인 대책 마련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70%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음에도 중증 장애인들의 백신 접종에 대한 계획이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음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장애인 건강권, 왜 보장되지 못하나

이런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없었던 것일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인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5년 장애인 건강 보장을 위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 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제2장 6조에 장애인 건강 보건관리 종합계획의 수립이 명시됐음에도 시행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들의 건강권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박주석 간사는 장애인 건강 정책이 항상 장애를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발달 장애인이나 감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진단의료 지원정책은 대부분 아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료 지원보다 조기 진단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장애 예방 중심의 보건 정책이나 재활 중심의 의료 정책 등은 정부가 장애를 예방·치료·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긍정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보다는 부정적이고 제거돼야 할 존재로 여기는 잘못된 통념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세심한 고려와 충분한 예산 투입을 어렵게 만든다. 박 간사는 “예산을 무조건 절감하려는 방향보다는 적절한 예산을 투입해 효과적인 장애인 건강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장애인의 의료 공백은 의료 공급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이 2017년에 시행되면서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이 핵심 제도로 이야기됐지만, 실제 중증장애인의 이용률은 0.01%에 불과하다. 최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주치의 등록은 567명이 했지만 실제로 활동한 의사는 88명에 불과했다. 장애인 진료 및 간호에 대한 지원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장애인을 진료하기 위해서는 편의시설과 의료 이송 체계, 의료인 교육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박 간사는 “장애 맞춤형 의료 진단기기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간사는 장애인 의료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에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 원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간 의료의 경우 장애인의 건강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좋은 ‘공공’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 통해 의료 공급 확대해야

장애인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장애인을 통합해서 포용할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 현재 장애 친화 건강검진이나 장애인 구강 진료센터 운영 등 다양한 장애 친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의무 지정의 형태가 아닌 공모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병원별로 공모가 진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중단된다. 이런 문제점들을 고려했을 때 박주석 간사는 ‘방문 진료 전담 공공의원 설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의원 설치를 통해 직접적으로 장애인에게 갈 수 있는 의료인 혹은 간호 간병 인력들을 공공에서 공급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장애인 건강권 보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그는 성남시 의료원이 시민참여 운영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처럼 장애인 참여 운영위원회를 지역 장애인 보건의료센터에서 운영해 지역 사회의 의료 자원을 조정·연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간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병원 병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이 공공에 대한 요구 역시 높아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공공의료 체계 안에서 보건소는 본래 업무대로 의료적 필요를 느끼는 장애인들을 찾아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방문진료 전담 공공의원은 장애인을 방문해 의료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건강관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정책은 예산을 주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민간으로 운영됐던 정책들은 대부분 중단되거나 경영 악화로 인해 유지되지 못했기에 반드시 공공에서 제공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은 공모 방식으로 선택적으로 진행돼왔던 장애 친화 사업을 의무적으로 시행해 공공병원이 2차 의료기관으로서 필수 의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 건강권 보장은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의 슬로건은 ‘건강해야 평등하다’다.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장애인 관련 연구는 대부분 치료나 재활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에,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연구는 보건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기를 바란다.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 장애인 건강 주치의 교육을 이수한 의사가 일반건강 관리 또는 주장애 관리 건강 주치의로 등록해, 중증장애인에게 만성질환 또는 장애 관련 건강 관리를 지속적·포괄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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